이진우
現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DJ, 現 유튜브 채널 ‘삼프로TV’ 진행자
1999년 경제지 기자로 시작해 라디오, 팟캐스트, 유튜브 채널에 이르기까지 25년간 다양한 영역에서 경제 이슈를 쉽게 풀어주고 전달한 우리나라의 독보적인 경제 해설 전문가입니다.
‘삼프로TV’ ‘손에 잡히는 경제’ 경제에 관심있는 누군가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프로그램들이죠. 두 간판 경제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경제를 전달해온 경제 평론가가 있습니다. 경제지 기자, 경제 라디오 진행자, 경제 유튜버는 물론 시총 2400억원에 이르는 경제 뉴미디어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경제’ 외길로 25년간 대중과 호흡해온 사람입니다. 바로 국내 최고의 경제 해설 전문가 이진우님입니다.
<“우연으로 점철된 아슬아슬한 인생이지만, 세상의 열명 중 한두명은 저 같은 괴짜여도 좋겠죠.”>
그야말로 ‘경제 N잡러’의 표본이지만 사실 공대 출신에 광고 회사 인턴과 보험사 직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는데요. 언뜻 보기엔 개연성 없고 그저 좌충우돌인 그의 인생 항로에서 어떻게 그만의 독보적이고 유니크한 커리어가 탄생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리멤버가 이진우님을 직접 만나 그 사연을 담아봤습니다. 아울러 난다 긴다하는 대통령 후보들조차 긴장하는, 인터뷰만 5000번 넘게 한 인터뷰의 대가로서 ‘질문’에 담긴 그만의 뾰족한 철학과 비전도 함께 들어봤습니다.
서울 여의도 삼프로TV 방송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중인 이진우님/리멤버
Chapter. 1
마이너의 치열함이 만든 일류의 내공
서울대 공대→광고사 인턴→삼성생명 입사
공고만 보고 경제지 덜컥 입사, 2년 뒤 신생 언론행
마이너 매체 기자라고 무시할까봐 죽어라 공부
의외로(?) 공학도입니다. 게다가 광고 회사 인턴으로 커리어를 출발하셨어요.
인생이 다 좌충우돌, 우당탕탕의 연속이죠 뭐. (웃음) 지방에서 살기 싫단 생각이 시작점이었어요. 공대생 예상 커리어대로면 지방에서 엔지니어로 평생을 보내게 될 텐데 답답할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더구나 엔지니어가 된다는 건 생각보다 너무 많은 초년의 시간을 잡아먹었어요. 당시엔 공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5년간 유관 업체에서 근무하는 조건으로 군 면제를 받았거든요. 동기·동창들의 가장 흔한 진로였죠. 이 과정을 다 밟으면 서른하나였어요. 20대 중반 이진우에게 31살 이진우는 거의 뭐 종친 인생처럼 느껴졌어요.
빨려가듯, 끌려가듯 엔지니어를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각오만 거창했고, 실제 진로 선택은 그야말로 우당탕탕이었습니다. 일개 공대생이 별다른 경험이나 정보가 있었겠습니까. 주변도 죄다 공대생이었고요. 광고 회사 인턴도 같은 과 선배의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 겁니다.
어느 날 비장한 말투로 “진우야, 나는 광고 회사에 들어갈 거야”라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1급 기밀처럼 들렸습니다. ‘남 앞에서 저렇게 당당히 밝힐 정도면 오죽 잘 알아보고 결정했을까’하는 생각에 저도 덥석 그 길을 따르기로 한 거죠. 그렇게 광고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된 겁니다. 빨려들듯, 끌려가듯 살지 말자고 했는데, 결국 보란듯이 그쪽으로 쭉 빨려들어가게 됐네요.
<“20대 중반 이진우에게 31살 이진우는 거의 뭐 종친 인생처럼 느껴졌어요.”>
광고 회사 일은 해보니 어땠나요?
상암기획이란 광고 회사에 들어갔어요. 영상이든 지면이든 광고를 실제로 찍고 만드는 회사였죠. 당시엔 이른바 ‘광고 붐’이었어요. 경기가 좋던 IMF 사태 이전의 한국이었거든요. 소비재들이 물밀듯 쏟아졌고 그만큼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새로운 광고들이 많이 나왔어요.
시장이 역동적인 데다, 광고업 자체도 정말 재밌었어요. 애초에 광고는 재밌으려고 아등바등 애쓰는 일인 데다, 미디어는 결과물이 바로바로 나오는 산업이라 성취감도 빨리 느꼈죠. 인턴이라 멋있는 일들만 맛보기로 해 더 좋을 밖에요.
인턴을 맛보니 이제 ‘제대로 광고인의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누가 “제일기획이 제일 크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제일기획 입사를 다짐했어요.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입사해야 하는지도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그 대가로 제 인생 두번째 우당탕탕의 진로 선택을 내리게 됐습니다.
삼성생명은 그럼 ‘실수로’ 들어가신 건가요?
제일기획이 삼성 계열사잖아요. 그래서 단순한 생각으로 ‘삼성 그룹 공채 시험에 먼저 붙자’고 생각했어요. 덜컥 공채 시험에 지원했고 무난히 합격했습니다. 신입 사원 연수 막바지에 어느 계열사에 가고 싶은지 묻더라고요. “제일기획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했는데 삼성생명으로 발령이 나더군요.
광고와 전혀 다른 보험일이었지만 그것도 되게 재밌더군요.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이겁니다. ‘재미만으로 30년짜리 진로를 설계해선 안 되겠구나.’ 뭐든 새롭게 배우면 재밌으니까 재미가 기준이 되면 당장 아무 일이나 다 괜찮은 일이 돼 버리더라고요. 지금 재밌는 것도 중요하지만 20~30년 후 내 모습도 마음에 들었어야 한다는 거죠.
신입 연수가 끝난 뒤 강남에 있는 한 영업소로 발령이 됐습니다. 저보다 10살쯤 많은 소장님이 한 분 계셨고, 나머지는 다 설계사로 구성된 조직이었어요. 헌데 그들을 보니 다들 막 정신없이 사는 거예요. ‘여기서 열심히 잘하면 저렇게 사는 거야? 그러고 싶진 않은데’란 생각이 들었죠. 어서 빨리 탈출해야겠단 마음이 커졌어요.
그럼 신문 기자로 진로를 튼 이유는 뭔가요?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죠. (웃음) 이게 제 세번째 우당탕탕 진로 선택입니다. 당시 하루 일과 중 하나가 설계사들에게 신문 스크랩을 해서 나눠주는 일이었어요. 어느날 서울경제신문을 정리하는데 ‘견습 기자를 뽑습니다’란 광고가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그곳에 지원했고 합격했습니다.
언론사도 보험사에서 느낀 바랑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다만, 한가지 달랐던 건 ‘정말 겁나게 바빴다’는 겁니다. 직업·직장을 바꿀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어요. 죽기살기로 견습 6개월을 마치고 기자로 살게 됐습니다. 졸업 후 경제지 기자에 이르기까지 불과 1년 반이 걸렸습니다. 참으로 우당탕탕한 나날이었죠. 제 초년 시절은 참 후회막급입니다.
<“마이너라고 무시되는 게 싫어서 죽기살기로 공부했어요.”>
무엇이 그리 후회되던가요?
하나만 꼽으라면 그 어떤 비교도 없이 한 신문사에만 지원하고 입사했던 순간을 뽑겠습니다. 어떤 신문사는 어느 출입처가 강점이고, 무엇을 좀더 전문성 있게 배울 수 있는지 쭉 따져보고 들어갔다면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서울경제신문은 참 괜찮고 좋은 직장입니다만 당시 업계에선 다소 마이너 취급을 받더군요. 저는 이름을 한번쯤 들어본 신문사는 다 똑같은 수준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입사하고 보니 언론사 간 모종의 서열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볼게요. 한 경제 기관의 국장이 언론에 어떤 얘기를 흘리고 싶어서 기자들을 저녁 식사에 부릅니다. 보통 한 테이블당 최대 6명까지 밥을 같이 먹으니, 국장 본인과 대변인 1명을 제외하면 기자들은 최대 4명까지 동석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4명 안에 들어야만 중요한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겁니다.
한 경제·산업 부처의 출입 기자가 20~30명쯤 되니 4명 안에 들기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일단 메이저 언론사 기자 2명을 부르고, 1명은 특별히 관리를 해줘야 하는 까칠한 사람을 불러요. 그럼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거죠. 때문에 기사를 훨씬 더 열심히 써야하고, 이것저것 열심히 파고 잘 취재해서 출입처 사람들 눈에 들어야 하더라고요. 무척 힘들었죠.
그래놓고 왜 신생 언론사로 이직하신 건가요?
네번째 우당탕탕 진로 선택이네요. 2001년 선배들이 나가서 세운 이데일리란 인터넷 언론사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후론 더 힘들었습니다. 이젠 모든 사람들이 아예 이름도 못들어본 회사의 기자가 됐으니까요. 취재원과의 대화 90%를 회사 소개에 썼어요.
매번 반복되니까 너무 짜증나는 거예요. 근데 뭐 별 수 있나요? 내가 더 공부하고, 내가 더 기사를 잘 써버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몇번 좋은 기사를 쓰면 이제 그 바닥 취재원들이 슬슬 저를 알기 시작해요. 더는 회사 소개가 필요 없어지고 대화가 훨씬 수월해지죠.
마이너라고 무시되는 게 유독 싫었던 것도 있어요. 예를 들어 어느 경제 기관 관계자를 만나 취재한다고 하면 문답이 오고갈 거잖아요? 그럼 뭘 알아야 대화가 되니까 공부를 해야죠. 헌데 아무리 공부해도 기자가 어떻게 전문가 식견을 따라잡겠어요. 바빠서 공부가 모자라면 이상한 질문도 하고 잘 못 알아들을 때도 있는 거죠.
그런데 메이저 신문 기자가 바보 같은 질문을 하면 ‘그래 모를 수도 있지’ 이해하며 설명을 해줄 텐데, 마이너 업체 기자가 같은 질문을 하면 ‘저 XX는 마이너라서 뭣도 모르는구나’라고 폄훼할 거라고 지레 겁을 먹은 거예요. 진짜 부지런히 공부해 취재원을 찾아갔죠. 원래 태생이 부지런한 사람이 아닌데 그땐 말 그대로 정말 짜증나기 싫어서 열심히 했어요.
서울 여의도 삼프로TV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이진우님/리멤버
Chapter. 2
라디오 DJ 13년이 기른 질문의 내공
기자 13년차에 MBC ‘손에 잡히는 경제’ DJ 발탁
“어머니도 이해 가능하게” 쉬운 경제 설명 특화
방송 덕에 모든 경제 분야에 좋은 질문할 내공 길러
2011년 MBC의 간판 라디오 프로그램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을 맡게 됐습니다. 어떤 계기였나요?
그전부터도 라디오 경제 방송에 몇번 게스트로 출연해왔습니다. 일찍부터 월급을 와이프한테 모조리 갖다줬어요. 집 갈 때 빵이라도 사먹으려면 용돈벌이가 필요했죠. (웃음) 그래서 라디오 출연 기회가 많아질수록 좋았습니다. 재밌고 부수입도 되니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방송 업계에서 ‘경제’는 참 계륵 같은 주제였어요. 워낙 중요해서 다루긴 다뤄야 하는데 다룰수록 청취율은 떨어지고 청취자들은 “졸립다”고 욕하고. 그런데 이진우란 녀석은 어려운 현상도 좀 쉽고 재밌게 설명하니까 썩 괜찮은 대안으로 보였나 봐요.
손경제 진행도 그 과정에서 찾아온 기회였어요. 생전 처음 방송 진행이란 걸 해보는 데다, 기자 일까지 병행하려니 어려움이 좀 있었습니다. 3년 정도는 버티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방송 일에 전념하기로 하고 기자를 관두게 됐습니다.
“이진우의 경제 설명은 참 쉽다”는 평이 많습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요?
언젠가 어머니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제 라디오 방송을 저희 어머니랑 동네 친구들끼리 다같이 듣고 있으시다고요. 그땐 조그만 방송사 라디오 몇몇 곳에 출연할 뿐이어서 ‘어머닌 왜 이걸 그리 자랑하셨지?’란 의문이 들더군요.
한참 고민해보고 알았어요. 제가 이데일리로 이직한 후부터 어머니도 참 난처하셨을 거라는 걸요. 한번은 “너 신문사로 또 이직했다며. 그럼 거기 신문 좀 가져와봐라”고 하셔서 “인터넷 신문사라 신문 발행을 안 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얘가 무슨 다단계 회사에 들어간 거 아닌가’라고 걱정하신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날 제가 라디오에 나온단 사실을 지나가듯 말씀드렸어요. 어머니껜 대단히 안심이 됐나 봐요. 아들이 쓴 기사엔 일절 관심이 없으셨는데, 라디오 방송은 매번 챙겨 들으시며 제1호 애청자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자꾸 더 쉽게 설명하란 피드백을 주시는 거예요. 본인과 친구들도 알아듣게 말이죠. ‘고작 용돈벌이일 뿐인데 효도라도 하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고안한 게 바로 비유예요. 사실 무언가를 제일 쉽게 설명하는 건 주저리 길게 풀어놓는 겁니다. 대신 지루해지죠. 쉬우면서도 짧게 설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비유예요.
예를 들면, 정부에서 물가 지수 품목에 어떤 걸 넣고, 어떤 건 뺐다고 해봅시다. 복잡다단한 배경설명부터 다 할 수 없으니 이렇게 설명하는 거죠. “어머니가 김밥을 쌀 때 거기에 넣을 속 재료를 고르실 거잖아요. 거기에 단무지 대신 새로 오이를 넣은 격이라고 이해하시면 되는 거예요. 요즘은 단무지보다 오이 인기가 훨씬 더 많아진 걸 반영한 거예요.” 이렇게 비유를 자주 쓰다 보니 어머니도 이제 알아듣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본인만의 철학이나 노하우가 있을까요?
사실 비유는 뭔가를 이해시키는 방법이 아니에요. 이해한 듯한 착각을 주는 방법이죠. ‘아까 김밥 얘기 알아들었지? 그럼 당신은 물가 지수 품목의 변동도 이해한 거야’란 착각을 심어주는 겁니다. 일종의 사기를 치는 셈이죠.
그럼 비유가 죄다 나쁘냐? 아닙니다. 비유를 통해 받아들인 착각이란 게 사실 무언가를 배울 때 대단히 중요하거든요. 특히 아주 어려운 걸 배울 땐 더 그래요. 기타 교습을 예로 들어 볼게요. 다들 처음엔 신나서 배우다가 딱 막히는 구간이 F코드예요. 여기서 좌절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럴 땐 “F코드 하나도 안 어렵다”고 타이르는 게 급선무입니다. 편법으로라도 제법 비슷한 소릴 내게 하면서 “어때 엄청 쉽지?” 하면서 넘어가버리는 거죠.
그럼 F코드는 언제 제대로 배우느냐? 그 고비를 넘기고 한참이 지나 수준이 높아졌을 때 다시 돌아오면 됩니다. 그땐 배운 게 아까워서라도 포기 못해요.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정면으로 마주하고 부러지기보단, 쉽다고 착각하고 대범하게 넘길 줄 아는 게 중요한 겁니다. 이 맥락에서 보면 제가 라디오에서 사람들한테 막 비유를 써 가며 “경제 참 쉬워요~”라고 속인 게 그리 잘못된 건 아니죠? (웃음)
<“방송 덕에 경제와 관련된 모든 곳이 제 출입처가 됐습니다.”>
벌써 라디오 진행 13년째입니다. 본인을 가장 변화시킨 게 있다면요?
만약 기자가 마트 유통 분야를 담당하면 최소 6개월 정도는 그것만 팝니다. 그럼 어느 정도 준전문가가 되고 그 분야 이슈를 수준급으로 브리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자한테 반도체를 물어보면 당연히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저 자기 출입처 공부만 하는 거죠.
반면 경제 방송 진행자는 다릅니다. 당장 내일 다뤄야할 아침 경제 이슈엔 백화점 얘긴 물론이고, 한국은행에서 기준금리를 올린 일, 기획재정부가 새로운 경제 정책을 내놓은 일 등 모든 영역이 망라돼 있거든요.
꼼짝 없이 밤잠 안 자고 공부해야 했습니다. 어떤 이슈가 터지면 친한 선배 기자들한테 관련 전문가 전화번호를 따요. 번번이 전화해서 궁금한 걸 물어봤습니다. 그런 일을 몇 년씩 하니까 모든 경제 영역이 제 나름의 ‘출입처’가 됐고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나 반도체도 좀 알고, 디스플레이도 좀 알고, 임대차 보호법 같은 법률도 좀 알아.’
지금 돌아보면 좀 과장된 자신감이었지만 사람이 그 정도 알잖아요? 그럼 무슨 이슈가 터졌을 때 더 들여다 보고싶은 호기심이 생겨요. 모르면 아예 접근조차 못하거든요. 이 둘 간의 차이는 굉장히 커요, 굉장히.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미국인을 만났어요. 내가 영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면 그저 도망갈 일이지만, 영어를 조금이라도 하면 “I don’t speak English well”라도 한마디 해줘야겠단 생각이 들죠. 그 차이가 상당한 격차를 만들어냅니다.
언론사에선 대략 30년차쯤 되는 고참 기자가 편집국장이 됩니다. 편집국장 정도면 대략 10군데 정도의 굵직한 출입처를 경험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은 다 알아요. 저에겐 방송 경험이 그 기간을 10년 정도로 압축해준 것 같습니다.
서울 여의도 삼프로TV 사무실/리멤버
Chapter. 3
뉴미디어 ‘삼프로TV’로 결실 맺은 프로N잡러
2019년 경제 콘텐츠 유튜버로 변신
4년만 구독자 235만, 연매출 160억 기업 발돋움
“원없이 묻고 답하고 싶단 갈증 겨냥해 성공”
2019년 유튜브 경제 채널 ‘삼프로TV’를 시작하셨습니다. 원 없이 묻고 답하는 긴 라이브 방송이 특징인데요. 취지가 뭔가요?
질문을 하다보면 늘 아쉬운 게 제대로 재질문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내공이 점차 쌓일수록 전문가한테 질문하고 싶은 건 많아지는데 라디오는 중간에 잘라야 해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삼프로TV의 최초 취지는 ‘인터뷰를 중간에 끊지 않고 인터뷰이가 하고 싶은 얘기, 내가 물어보고 싶은 얘길 다 털어내 보자’였습니다. 취지는 좋아도 대부분이 저희 팟캐스트를 지루해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때문에 알아봐주는 사람들만 만족시키자고 했는데, 의외로 많은 수요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 일이 이렇게 커진 겁니다.
<“답변의 좋고 나쁨은 좋은 전문가가 아니라 좋은 질문자에 달린 겁니다.”>
구독자만 235만명에 이르는 한국에서 가장 규모 있는 경제 유튜브 채널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연간 160억원대 매출을 내는 명실상부한 기업으로도 발돋움했고요. 성장 비결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세요?
사람들이 갖고있는 ‘제대로 된 질문을 향한 니즈’를 풀어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삼프로TV는 독특하게도 질문자를 3명(삼프로) 두고 답변자를 1명만 두는 구조였어요. 사실 전문가는 제대로 검증만 됐다면 별로 중요한 변수는 아닙니다. 유치원생이 묻든, 대학원생이 묻든 어떤 답도 내놓을 수 있잖아요. 결과적으로 인터뷰의 성패는 전적으로 좋은 질문에 달려있는 거죠.
그래서 진행자를 특이하게 3명이나 둔 전략은 잘 먹힌 것 같습니다. 일단 3이란 숫자 자체가 굉장히 안정적입니다. 어느 한 명이 질문을 던지는 와중에 다음 사람은 새로운 질문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앞선 두 질문의 답을 여유롭게 곱씹어 보며 제3, 제4의 질문을 준비할 수 있고요.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입니다.
질문의 앵글도 충분히 다채로워지죠. 금융 시장에서 오랜 경험이 있는 사람,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사람, 그리고 양쪽의 빈틈을 메워줄 수 있는 사람, 이 3명이 만들어내는 질문의 조화가 시청자들의 질문 갈증을 입체적으로 잘 풀어준 것 같습니다.
쇼츠의 시대라 하는데 긴 라이브를 계속 고집하실 건가요?
쇼츠의 인기에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영상 소비 방식이 ‘고민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가엔 확실히 정답이 있습니다. 당연히 롱폼입니다. 한 사회의 수준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대부분의 사회 이슈는 정답이 딱 떨어지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서울의 쓰레기를 어디에 매립하고 어디서 소각해야 될지 결정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죠. 이 문제에 과연 누구도 태클 걸 수 없는 정답이 있겠습니까? 최적의 안들을 놓고 장단점을 치열하게 따져보는 수밖에 없는 거죠.
헌데 고민이 얕고 짧아지면 무용한 답만 얻게 되는 겁니다. “서울 쓰레기, 어떻게 해야 합니까”란 질문에 “적절한 곳을 선정해 친환경적으로 잘 처리해야죠”란 원론적인 답변만 나오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 질문은~”처럼 얄팍한 질문만 이어지는 거죠. 물론 정답을 얻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오래, 깊이 고민할수록 최선의 답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경제 담론의 장을 삼프로TV를 통해 마련하고 싶었어요.
2022년 1월 20대 대선 특집 영상에서 대선 후보에게 질문 중인 이진우님/삼프로TV
Chapter. 4
‘대선 후보 인터뷰’로 찾아온 별의 순간
20대 대선 특집으로 총 조회수 1380만회 초대박
“채널 신뢰와 응축된 내공이 빛 발한 순간”
재질문 맘껏 가능한 조건으로 다음 특집도 추진
삼프로TV의 가장 결정적 순간을 꼽으라면 20대 대선 특집을 꼽는 분들이 많습니다. 누구 아이디어였나요?
저희 머리에서 나온 건 아니었습니다. 특정 후보가 인터뷰를 하자고 먼저 제안을 해왔어요. 재밌을 것 같긴 한데 그 후보만 인터뷰하면 편파성 시비가 들어오겠더군요. 그래서 나머지 주요 후보들한테 다 섭외를 넣었어요. 아무래도 생소한 컨셉이다 보니 처음부터 다들 오케이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가 언론사가 아니라 유튜브 채널이었던 게 섭외에 가장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후보 입장에선 특정 언론사랑만 인터뷰하는 게 어렵죠. 때문에 가려면 다 가고, 안 가려면 다 안 갑니다. 하지만 삼프로TV 나갔다고 해서 언론사가 “왜 우리한텐 안 옵니까”라고 따지기 어렵잖아요. 때문에 다들 결국 흔쾌히 수락한 것 같아요.
그래도 공정성 시비가 안 걸리도록 최선을 다했어요. 편집도 없었고, 방송 분량도 동일하게 맞췄습니다. 주제도 정책으로만 한정했죠. 후보의 도덕성을 보는 게 아니라 고민을 대하는 역량과 깊이, 가치관을 보고자 하는 컨셉이었으니까요.
<“채널이 쌓아온 신뢰와 내공이 빛을 발한 순간… 그러나 충분한 질문을 던지지 못해 아쉬움이 더 큽니다.”>
반응이 엄청 뜨거웠습니다. 누적 조회수 1380만의 초대박이 났는데요.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대외적으로 삼프로TV가 확실히 더 알려진 계기였죠. ‘꼭 주식, 금융 얘기만 잘 다루는 채널이 아니구나’하는 각인도 잘 시켜드린 것 같습니다. 채널이 쌓아온 신뢰와 여러 응축된 내공이 빛을 발한 순간이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인터뷰 자체만 놓고 보면 제 스스로는 그리 좋은 평가를 줄 순 없을 겁니다. 업계에선 보통 “인터뷰는 첫 질문이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2차, 3차 질문이 더 중요해요. 재질문을 맘껏 던져봐야 바닥까지 같이 내려가보면서 후보의 고민 깊이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때 인터뷰로는 불충분했습니다. 정해진 질문을 주고받는 신입 사원 면접과 크게 다를 게 없었어요. 사전 질문지를 미리 나눠준 것도 아쉽고요. 예고치 않은 질문을 받아야 평소에 어느 정도로 고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대중은 예고치 않은 몇개의 재질문만으로도 열광한 것 같아요.
기존 미디어에선 거의 보이지 않던 질문 방식이니까요. 사실 방송이 굉장히 길다 보니 다행히(?) 사전 질문의 의미가 퇴색되더라고요. 후보들도 질문지에 있고 없고를 떠나 그 순간만큼은 충실히 몰입해 답을 하려 했고요.
다음 대선 특집도 추진하실 건가요?
저는 하고 싶어요. 절대 똑같은 방식으론 안 할 겁니다. 인터뷰 시간도 충분히 더 길게 잡고, 사전 질문지를 주되 반드시 재질문을 여러 차례 던질 수 있는 조건으로 할 겁니다. 다만, 지난번처럼 오로지 정책을 주제로만 물어볼 겁니다. 물론 후보의 도덕성은 당연히 중요합니다만, 그건 저희 채널 말고도 대안이 차고 넘치잖아요. 어딘가는 정책에만 치중해 파헤치는 것도 필요해요. 우리가 못하면 다른 데서라도 그렇게 해주면 좋겠어요. 정책엔 후보의 고민이 담겨 있고, 그 후보가 하는 고민의 수준엔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서울 여의도 삼프로TV 방송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중인 이진우님/리멤버
Chapter. 5
기자·방송인·사업가… 이진우 4.0은?
경제지 기자, 라디오 DJ, 사업가… 원조 N잡러
좌충우돌의 여정 속 ‘경제’란 일관성 유지
“4.0은 없어. 삼프로TV 발전 주력할 것”
거의 10년 주기로 메인 타이틀이 바뀌는 ‘원조 N잡러’이신데요. 혹시 출입국신고서 직업란엔 뭐라고 적으시나요?
그냥 통과 잘될 만한 걸로 적어요. (웃음) 어차피 정교하게 입증할 게 아니니까 ‘이 녀석들이 뭘 해야 덜 신경 쓰고 빨리 통과시켜주지’ 고민하면서요. 하지만 질문의 참뜻은 그게 아니죠. 직업이 굳이 하나라고 생각해야만 하는 방식이 저랑은 좀 안 맞지만 굳이 꼽자면 ‘넓은 의미에서의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해요.
광의의 저널리스트란 ‘세상을 보여주는 창을 디자인하고, 깨끗하게 닦고, 효율적으로 다양한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줘서, 사람들이 자신의 생업에 보다 많은 시간을 잘 쏟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그걸 기사로 도와주면 기자인 거고, 영상으로 도와주면 PD인 거고, 말로 도와주면 아나운서인 거고요. 여하간 저도 저만의 방식으로 돕고 있는 거니까 저널리스트라고 보는 거죠.
‘광의의 저널리스트’로 살면서 가장 행복한 점이 뭔가요?
대부분의 직업은 쏟아내는 게 일이고, 일하지 않을 때 채웁니다. 반면 방송에 나오는 저널리스트는 일하는 시간이 내내 채우는 시간이 됩니다. 여러분이 남는 시간에 스스로를 채우기 위해 인터뷰를 볼 때, 저는 그 인터뷰를 만들면서 저절로 저를 채웁니다. 그것도 정신을 엄청나게 집중해서 말입니다. 사람은 내가 필요하다 싶은 건 더 열심히 배우려고 하잖아요. 결투가 일주일 뒤에 있으면 진짜 밤새워서 죽기살기로 싸움을 배울 거 아닙니까. 그만큼 세상에 돌아다니는 모든 지식을 향해 척수가 날카롭게 세워져 있는 상태가 되는 거죠. 이게 얼마나 축복입니까.
게다가 지식을 소비하는 연비도 무척 높아요. 누군가는 3만원짜리 책을 사도 그걸 어디 써먹지 않으면 고스란히 비용이 됩니다. 그러나 저는 그 책에서 얻은 지식을 제법 다양한 데서 써먹잖아요? 그뿐입니까. 어떤 책을 볼지, 심지어 어떤 사람을 만나서 배울지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죠. 내가 원하는 최고의 전문가들을 앞에 앉혀다가 1시간씩 돌아가면서 궁금한 점을 맘껏 물어볼 수 있는 거예요. 이 모든 일을 하면서 생계도 해결돼요.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 일입니까. 이런 삶은 천년 전 황제만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내 직업은 일하면서 배우는 저널리스트… 천년 전 황제만 가능한 인생”>
부럽습니다. 혹시 잃은 건 없나요?
오로지 직업과 관련된 분야에만 특화된 인간이 돼버렸습니다. 제게 있어 가장 최신 가요는 2001년에 나온 서태지와 아이들 라이브 앨범 속 ‘하여가’고, 가장 재밌게 문학을 읽은 기억도 2002년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커리어는 예측 불허입니다. 이진우 1.0은 기자였는데, 2.0에서 진행자가 되더니, 3.0에선 사업가가 됐으니까요. 혹시 이진우 4.0은 뭘까요?
3.0까진 좌충우돌이었어요. 하지만 4.0은 3.0의 안정적 연속선이 아닐까 싶어요. 나이가 어느 정도 드니까 우당탕탕 일에 맞닥뜨리기보단, 내가 어떤 일을 어떤 우선순위로 해놓고 떠나야 하는지가 대충 다 보여요. 그 일들만 다할 수 있어도 충분하단 생각이 들어서 새로운 4.0은 없을 것 같습니다.
20대 때의 막연함과 좌충우돌은 뭘 잘 모르고 답이 안 보였기 때문이었어요. 반면 지금은 제가 하는 일이 잘 보이잖아요. 그러니 제가 뭘 해야 하는지도 알고요. 그래서 이제 필요한 건 진로 탐색의 시간이 아닌, 체력·행운·의지의 지속이 됐네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25살의 이진우로 다시 돌아가면 지금처럼 사실 건가요?
아닙니다. 너무 아슬아슬한 삶이었어요. 딱 10~15살 선배들에게 돌다리도 두드려 보듯 물어보면서 살았을 겁니다. 다만, 지금처럼 기형적이면서도 유니크한 커리어로는 살지 못했을 것 같긴 해요. 세상에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중 저 같은 괴짜 1~2명쯤은 있어도 좋을 것 같긴 합니다.
프롤로그 주인공과의 협업을 원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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