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만
現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행정학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자입니다. 하버드대를 비롯, JPART·미국경영학회(AOM)·미국행정학회(ASPA) 등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고 SSCI급 논문을 40편 이상 저술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학술 출판사 엘스비어가 선정하는 세계 최상위 연구자에 이름을 올렸고, 첨단 기술과의 융복합적 연구를 시도해 ‘홍고(HongGo)’ ‘노바(Nova)’ 등 바둑 AI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으로도 재임 중입니다.
전 세계 톱클래스 사회과학 저널들에서 주목하는 한국의 행정학자가 있습니다. 웬만한 연구자가 단 한 편도 남기기 어려운, 행정학 분야 최고 학술지에 등재되는 SSCI급 논문만 무려 40편 이상을 쓴, 국내외 행정학계에 정평이 난 연구자죠.
그런데, 이 잘나가는 행정학 교수님의 다음 연구 테마는 뜻밖에도 AI. 순수 ‘문돌이’로선 이례적으로 손수 코딩까지 배워 가며 알파고 같은 바둑 AI를 뚝딱 만들어 내더니, 급기야 세계 대회까지 출전해 쟁쟁한 AI들을 꺾어 버리는 경지에 이르죠. 바로 오늘 프롤로그의 주인공,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홍순만님의 이야기입니다.
POINT OF VIEW
“도전을 멈추는 순간, 학자로서의 제 지식도 함께 멈출 겁니다. 비단 학문에만 적용되는 얘기일까요?”
행정학계의 신성이자 이단아인 그의 첫 직업은 회계사였습니다. 범상치 않은 연구만큼이나 커리어 궤적도 예사롭지 않았죠. 잘 다니던 1등 회계 법인을 박차고 나와 돌연 행정사무관으로 변신하더니 곧바로 한미 FTA 협상단에 합류해 버립니다. 결국 학문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건 서른을 훌쩍 넘긴 뒤였죠.
첫출발부터 지금껏 도무지 종잡긴 어려워도 그만큼 다채롭게 채워진 홍순만님만의 커리어 여정, 오늘날까지 그의 연구를 집요하게 관통하는 식지 않는 호기심과 괴짜다운 도전의 원천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연희관의 한 강의실에서 홍순만님/리멤버
Act 1.
교수님의 첫 직업은 회계사?!
홍순만님의 첫 번째 직업은 회계사였습니다. 2001년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중 CPA에 합격, 국내 최대 회계 법인인 삼일회계법인에서 5년간 회계사로 근무합니다.
원래는 회계사셨어요.
어려서부터 수학을 좋아하고 잘했어요. 모든 걸 두루두루 열심히 공부하기보단 하나에 빠지면 끝장을 보는 학생이었는데, 제겐 그 하나가 바로 수학이었죠. 때문에 적성도 이과에 가까운 편이었어요.
그런데 왜 문과를 택하신 건가요?
그땐 어리니까 아버지 권유를 그대로 따랐죠. 공무원 출신이셔서 그런지 제가 고시를 봐 똑같이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거든요. 법대 진학도 고려했는데 암기 공부가 너무 싫어 단념하고, 대신 숫자를 많이 보는 상경 계열에 입학했습니다.
여러 고시 중 왜 CPA였나요?
학자로서 민망한 얘기지만 솔직히 대학 공부가 너무 재미없었어요. 수업 때마다 제가 듣도 보도 못한 기업들의 경영이나 매출 전략을 논하고 있는데, 그게 어찌나 안 와닿던지요.
만약 경영학 대신 좀더 아카데믹한 경제학을 전공했다면 인생이 일찍부터 다르게 풀렸을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전 학문이랑 도저히 안 맞는다 느꼈어요. 그래서 군 복무 마치면 딴생각 않고 그저 행정 고시나 준비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복학 이후로 생각이 점점 바뀌어요. 당시 총장님이 회계학과 출신이셨는데 그 때문인지 학교에서 ‘회계’를 세게 밀어줬어요. 각종 회계학 강좌는 물론 CPA 시험도 적극 장려했고 그 준비생들도 상당히 많았죠.
그 분위기에 휩쓸려 저 역시 고민하던 중, 저희 과 한 원로 교수님께서 해 주신 한마디가 제게 결정타가 됐습니다.
어떤 말씀이셨길래요?
진로 상담차 찾아뵌 자리였는데, “기왕 경제학과가 아닌 경영학과에 왔다면 CPA 시험을 한번 봐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 이유가 궁금해 여쭸는데 그게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회계사는 민간에 종사하지만 공공에 기여하는 면도 크다”면서 “회계사는 자본주의의 파수꾼”이라 말씀하시는 거예요. 표현이 굉장히 폼 나서 그런지 울림이 컸던 것 같아요. 그날부터 묘하게 CPA 쪽으로 마음이 기울더라고요.
실제로 회계사가 돼 보니 어떠셨나요?
처음엔 그닥 즐겁진 않았어요. ‘곧 죽어도 회계사를 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어른들 말씀과 분위기에 이끌렸던 거니까요. 오히려 흥미가 생긴 건 업무를 익힌 다음부터예요. 과장 좀 보태면 회계 감사 시즌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는 데도, 배우는 일 대부분이 무척 재밌었어요.
무슨 업무들을 하셨길래요?
회계사는 크게 3가지, ‘회계 감사’ ‘세무’ ‘컨설팅’을 합니다. 지금 삼일에선 담당 본부가 각각 나뉘어 있지만, 당시엔 하나의 본부가 여러 분야 업무를 했어요. 특히 제가 속한 본부는 주로 회계 감사를 하면서도 세무도 많이 했고 간간이 컨설팅까지 했죠.
제 성격에 단조롭게 회계 감사 하나만 했다면 지루해 했을 거예요. 헌데 운 좋게 다방면으로 일을 배우니 흥미가 배가된 겁니다.
그럼에도 딱 5년 만에 회계사를 관두셨어요.
그 흥미란 게 단순히 업무를 넘어 공부 자체로 옮겨 가더라고요. 전공 시간엔 하품만 나오던 이론들도 현장에서 맞닥뜨리니 ‘그 얘기가 이런 얘기였어?’하고 이해하는 재미가 쏠쏠했죠. 그러다 보니 청개구리마냥 대학 때보다 오히려 직장에 다니면서 공부 열정이 폭발한 거예요.
사실 그 이전까진 오직 자격증 공부에만 매달린 거잖아요. 공부다운 공부는 해 본 적도 그 필요성조차 느껴 본 적 없던 거죠. 그런데 참 재미있어요. 엉뚱하게도, 일을 하면서야 비로소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으니까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연구실에서 인터뷰 중인 홍순만님/리멤버
Act 2.
한미 FTA 협상단에서 ‘세상 읽기’를 배우다
2006년 홍순만님은 회계 법인을 관두고, 돌연 외교통상부(현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에 들어가 행정사무관이 됩니다.
뜻밖에 공무원이 되셨어요.
원래는 유학을 가려 했어요. 미국에선 석사 학위 없이도 박사 과정을 밟을 길이 있더라고요. 때문에 미국에 가 곧장 박사 공부를 하려 했죠.
도의상 회사에 계획도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헌데 경솔했죠. 계획이 그만 틀어져 버립니다. 스무 군데가 넘는 대학에 지원했는데 전부 떨어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어찌하셨나요?
차마 회사로 복귀할 순 없겠더라고요. 어차피 다음 해 유학에 재도전하려 했거든요. 얌체가 되고 싶진 않았습니다. 남은 1년을 어떻게 보내나 고민하던 찰나, 외교통상부에서 근무하던 친구한테 행정사무관 특채 소식을 듣게 돼요.
그때가 한미 FTA 협상이 막 시작했을 무렵이거든요. 국가적으로 워낙 중차대한 사안이다 보니 민간 경력직도 대거 충원해야 했고, 마침 회계사도 경력 4년 이상이면 뽑는다더라고요.
솔깃했습니다. 역사적 협상의 한복판에서 일한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홀린듯 지원해 덜컥 들어가게 됐습니다.
거기선 어떤 업무를 맡으셨나요?
통상교섭본부란 곳에 배치됐어요. 외교통상부 산하 조직으로 당시 FTA 협상을 이끌던 곳이었죠. 여기서 저는 예산 등 각종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부서에 있었는데, 사실 제 주력 업무는 그런 회계 부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무엇이었나요?
생뚱맞게도 언론 대응이었습니다. 많이들 기억하시겠지만 그때 FTA를 향한 국민 여론이 엄청 부정적이었어요. 보수는 노무현 정부와 사이가 안 좋아 적대적이었고, 진보는 미국과의 FTA를 일종의 배신으로 간주해 적대적이었죠.
때문에 협상단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습니다. 더구나 정부-언론 간 갈등이 최고조이던 시절이니 오죽했겠나요. 언론 대응을 전담하시는 고참 사무관이 한 분 계셨는데 혼자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죠. 저를 비롯한 주니어 서너명이 일을 거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요?
장관님이나 본부장님께 인터뷰가 잡히면 예상 질문지를 만들거나, 언론에 관계된 의전 혹은 전반적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기도 했죠. 하지만 무엇보다 주요했던 업무는, 부서마다 서로 다른 공보용 메시지들을 일정한 톤으로 조율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협상단 안에선 어젠다별로 담당 과가 여럿 있었어요. 자연히 각 과마다 매 협상 속도나 결과물이 달라 내놓는 메시지들도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았죠. 이때 이 메시지들을 검토하며 나름의 전략에 따라 일관되게 다듬는 역할을 했습니다.
평소도 마찬가지지만 협상 시즌엔 취재 열기가 훨씬 더 뜨겁거든요. 이 와중에 메시지부터 어설프게 나가면 경을 칠 수 있는 거죠. 때문에 모두가 전투를 치르는 마음으로 집중하며 작업에 임했습니다.
내년이면 한미 FTA 협상 20주년입니다. 당시 내부자로서 소회가 궁금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 길은 우리가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는 옵션이었다 생각합니다. 물론 부작용이 없다 말할 순 없겠지만요.
이젠 상당수 국민들이 한미 FTA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진영을 막론하고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듯도 한데, 그 과정에 약소하게나마 참여한 일원으로서 나름의 뿌듯함을 느낍니다.
전후 커리어를 고려할 때 이 무렵의 경험은 굉장히 유다른 듯해요.
맞아요.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여기서 머문 1년반 동안의 경험들이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져요. 이때가 아니었다면 세상을 보는 시야를 이만큼 넓힐 수 있었을까 싶거든요.
이전까지만 해도 전 오로지 재무만 다루는 전문직이었어요. 그러니 시야가 좁았을 수밖에요. 만약 그대로 학자가 됐다면 더 좁아졌을 거예요. 대개 한 우물만 열심히 파는 직업이니까요.
그러나 이 시기는 정말 폭넓은 주제의 사안을 다뤄야 했잖아요. 자연히 시야가 넓어질 수밖에요. 게다가 언론인들은 세상과 늘 호흡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좌우 고루 다양한 언론과 소통하면서, 세상 흐름을 기민하게 파악하는 눈도 어느 정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훗날 행정학자로서 꽤나 유다른 주제들을 발굴해 연구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 믿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연구실에서 인터뷰 중인 홍순만님/리멤버
Act 3.
하버드 케네디스쿨서 ‘행정학’에 눈을 뜨다
2007년 홍순만님은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로 유학길에 오릅니다. ‘하버드 4대 명문 대학원’ 중 하나로 꼽히는 이곳은 각국 정치인·석학을 대거 배출한 세계 최고 정책 연구 기관으로 알려져 있죠. 바로 여기서 그는 공공정책학을 전공, 석·박사 학위를 얻습니다.
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이었나요?
앞서 지원한 스무 대학 모두한테 저를 왜 불합격시켰는지 피드백을 달라고 요청했어요. 단 두 곳에서만 연락이 왔는데 그중 하나가 하버드였습니다.
여기서 “해외 유학생이 학부만 마치고 오는 케이스는 드물다”면서 석사 지원을 추천하더라고요. 그땐 저도 학문에 확신이 없던 시기였거든요. 일단 석사부터 해 보고 판단하잔 생각에 그쪽으로 맘을 굳혔습니다.
헌데, 정작 하버드엔 경제학 분야 석사 과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다 케네디스쿨이란 곳을 알게 되죠. 제 관심 분야가 응용 경제학이었는데,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도 이 갈래로 분류될 수 있는 개념이거든요. 바로 여기서 석사를 시작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공공정책학이란 어떤 학문인가요?
20세기 초까지 저명한 학자들은 경제학자·사회학자·정치학자, 이런 식으로 타이틀이 여럿이었죠. 현재로선 상상도 어려운 일입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학문의 갈래가 다양해졌고 지금은 같은 학문 안에서도 전공이 세분화돼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역으로 이젠 통합적 관점이 부족한 시대가 됐어요. 바로 이 문제의식에서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도 탄생한 겁니다. 케네디스쿨에선 공공정책학을 하나의 고정된 학문 영역이라기보다,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러 학문이 융합하는 실천적인 분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나의 정책을 보다 더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려는, 특정 학문이 아니라 일종의 연구 프로그램에 가까운 개념인 거죠. 시작부터 학문 외길만 걷지 않은 제게도 왠지 적격일 거라 봤습니다.
박사 논문은 어떤 주제로 쓰셨나요?
‘인터넷이 사회를 어떻게 바꿨고, 바꾸고 있고, 바꿀 것인가.’ 이걸 정치·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살펴보는 게 주제였어요. 논문 구상 시기가 2009년이었는데 이 무렵만 해도 장밋빛 전망이 넘칠 때였거든요. 연구나 담론에서도 기술 발전이나 플랫폼의 효율성 등 긍정적 효과에만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제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반대로 저는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한 부정적 영향에 집중해 보고자 했어요. 그게 바로 ‘시장 독점의 심화’였습니다. 그리고 이 전망의 근거로 ‘뉴스 데이터’에 주목한 것이고요.
독점과 뉴스, 언뜻 연결이 잘 안 되는 듯합니다.
인터넷으로도 판로가 열리면서 소상공인들의 파이가 커지고 독점 문제도 완화할 거라 보는 견해가 당시 지배적이었는데, 전 반대 입장이었어요. 하지만 이커머스가 워낙 초기다 보니 이걸 예단할 데이터가 마땅치 않았죠.
그래서 대신 뉴스 데이터를 살펴본 거예요. 인터넷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성 언론사들의 독점이 정말 해소됐는지 아니면 심화했는지 추적해 보면서, 향후 소비자들의 선택이 어떻게 변화할지도 가늠할 수 있으리라 본 거죠.
참신한 접근이었네요. 분석 결과는 어떠했나요?
미국 내 신문사별로 기사 트래픽을 비교해 봤어요. 우리가 인터넷에서 기사를 보는 경우는 크게 2가지죠. 언론사 이름을 검색창에 직접 쳐서 조회하거나, 포털에서 다른 검색을 하다 유입하는 것. 전자는 물론이고 후자에서도 독점 지수가 심화하고 있더라고요.
가령, ‘오바마’를 검색하면 상단에 뜨는 유명 언론사 뉴스로만 트래픽이 몰리는 거예요. 이로 미뤄 볼 때 언론뿐 아니라 향후 이커머스 영역에서도 독점이 심화하리라 예측한 게 본 논문이었습니다.
예측이 어느 정도 적중한 듯합니다.
지금이야 온라인 플랫폼 독점 현상이 만연하고 모르는 분들도 없죠. 하지만 그땐 ‘(온라인) 플랫폼’이란 용어조차 없을 때거든요. 발간이 2012년이었는데 몇 년만 일찍이었다면 참 좋았겠다 싶습니다. (웃음)
여하간 케네디스쿨에서의 5년을 거치면서 비로소 학문에 뚜렷한 흥미와 확신이 생겨요. 처음엔 꼭 연구자가 되고 싶다거나 강단에 서야겠단 생각도 없었는데, 박사를 마칠 즈음엔 이 길을 계속 걸어도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좀 멀리 돌아왔지만, 결국 제가 끝장을 볼 녀석은 ‘연구’란 걸 알게 된 거예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연구실에서 인터뷰 중인 홍순만님/리멤버
Act 4.
행정학계의 신성, 글로벌 톱 저널을 휩쓸다!
유학을 마친 홍순만님은 2013년 연세대 행정학과 조교수에 임용됩니다.
유학을 끝내자마자 교수로 발탁되셨어요.
실은 미국에 좀더 머물고자 했어요. 연구 환경이 원체 더 나은 데다 한국 친구들한테 “국내 대학원 출신이 아니면 한국서 교수 생활하기 어렵다”는 괴담(?)도 들었거든요. 결과적으론 낭설이었지만 그땐 여러모로 귀국이 좀 꺼려지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모교에서 뜻밖의 제안을 주신 거예요. 원칙상 연세대는 박사 학위를 받은 지 1년이 안 된 사람은 교수로 임용하지 않아요. 헌데 그 원칙을 깨면서까지 절 스카웃하신 거죠. 큰 편의를 베풀어 주셨는데 사양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 감사히 받아들였습니다.
왜 이례적 제안이 나온 건가요?
당시 저희 학과는 나름의 재도약을 준비 중이었어요. 때문에 저처럼 정통 행정학 쪽으로 강하게 트레이닝돼 있진 않지만, 이력이나 시각이 독특한 신진 학자한테도 선뜻 기회를 주면서 기존 틀을 과감히 깬 거예요.
임용 첫해 국내외 행정학계 톱 저널 JPART 논문 등재를 시작으로 2015년 미국경영학회(AOM), 2018년 JPART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하고 사회과학 분야 최고 학술지에 등재되는 SSCI급 논문만 40편 넘게 저술하는 등 홍순만님은 소장 학자라 믿기 힘든 탁월한 성취를 일궈 냅니다.
굉장히 빠르게 굵직한 연구 성과들을 내셨습니다.
논문을 써도 출판은 몇 년 뒤 이뤄지기도 해요. 제 경우엔 미국 박사 과정 때 연구가 교수 임용 초반까지 출간이 밀렸습니다. 그럼에도 제 연구에 많이들 관심을 보여 다행이고 감사할 따름이었죠.
2018년 행정학 분야 최고 학술지 JPART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으셨어요.
케네디스쿨 시절 영국 정부가 의뢰한 컨설팅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여긴 석사 과정에서 논문 대신 컨설팅 보고서를 쓰게 하거든요. 이때를 계기로 관심이 생겨 영국 행정 부문을 쭉 지켜보다가, 아주 흥미로운 연구 주제를 발견하게 됐죠.

홍순만님이 JPART로부터 받은 최우수 논문상 상패/리멤버
‘푸른 제복을 입은 흑인(Black in blue)’이란 제목의 논문이었죠. 어떤 내용인가요?
영국의 인종 이슈와 경찰 제도를 소재로 한 연구예요. 90년대 말 영국의 한 흑인 젊은이가 20대 백인 청년들한테 구타를 당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헌데 경찰은 조사도 없이 가해자들을 무죄로 간주해 수사를 무마해 버려요.
결국 이 사건은 큰 사회 이슈로 부상했고 굉장히 빠르게 개혁 조치가 단행됩니다. 사회과학자 입장에서 봤을 때 이건 아주 귀중한 연구 기회였어요.
어떤 이유로요?
공공 조직은 관찰해 봄직한 큰 변화 자체가 애초에 드물어요. 더구나 그 개혁 효과를 정교히 검증하기도 어렵고요. 가령, 한 나라의 정권이 바뀐다 가정해 봐요. 한두 요소만 바뀌나요? 아니죠. 손대는 게 정말 많죠. 특정 인과 관계를 세우기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이 케이스는 다르죠. 경찰 조직이란 한 영역에서만 개혁이 일어났고, 그 조치도 흑인 경찰관의 비중을 높이는 선에서 그쳐 변화 요인이 비교적 단일했거든요.
더구나 영국은 지역별로 경찰 조직이 독립 운영돼 그 증가분도 제각각이었습니다. 개혁의 효과를 제대로 살피고 분석하는 데 더없이 유리한 기회였던 거죠. 자연과학뿐 아니라 사회과학도 이런 환경의 이벤트를 포착해 내는 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분석 결과는 어떠했나요?
기존 영미권 연구에선 ‘흑인 경찰관 비중’과 ‘흑인한테 경찰이 얼마나 가혹한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걸로 나왔어요. 흑인 경찰관이라 해서 흑인들한테 더 잘해 주지 않으니, 비중을 늘린다고 풀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제 연구에 따르면 그건 틀린 분석입니다. 물론 경찰관이 같은 인종이라고 더 봐주지 않는 건 저도 맞다고 봐요. 하지만 개별 집단의 행동에만 집중한 연구들이 간과한 게 있어요. 그게 바로 조직 문화입니다.
예를 들어 한 경찰 조직의 60~70%가 흑인이라 가정해 봐요. 그럼 거기서 흑인 비하 농담 같은 게 오갈 수 있을까요? 바로 옆 동료가 흑인인데? 조직 내 특정 인종의 비중이 늘면 문화 자체가 바뀌면서 나타나는 효과가 커요. 이걸 데이터로 설득력 있게 보여 주고자 한 게 제 연구였습니다.
2020년 미국 전역을 휩쓴 ‘Black Lives Matter’(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때 이 논문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각종 시민 단체나 매스컴은 물론 미 의회 안에서도 수차례 인용됐어요.
연구자인 제가 흑인도 백인도 아니란 사실도 한몫한 듯합니다. 아주 객관적 입장에서, 그야말로 객관적인 수단인 데이터를 통해 제시한 결과였다 보니, 그만큼 높이 평가해 주신 것 같아요.
홍순만님은 일련의 연구 성과에 힘입어 임용 불과 4년 만인 2017년 테뉴어(정년 보장)를 받고, 2022년엔 정교수로 초고속 승격합니다.
SSCI급 논문만 40편 이상 쓰셨습니다. 웬만한 연구자가 평생 한두 편 남기기도 어렵다 들었어요.
코로나 사태 전까지만 해도 전공 연구에만 푹 빠져 있었어요. 그 후론 게을리해 반성 중입니다. (웃음) 사실 제가 특별히 잘난 연구자라 그랬던 건 아니에요. 국내 대학에선 조용히 연구하고 논문만 쓰는 데 인센티브가 잘 주어지지 않거든요. 외려 외부 활동의 보상이 더 큰 편이죠.
당연히 양쪽 모두 중요합니다. 다만, 전 적어도 40대 중반까진 연구에 훨씬 초점을 맞추고 싶었어요. 상대적으로 젊을 때 더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제 수요자인 학생들 니즈에도 좀더 부합할 거라 봤거든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연구실에서 인터뷰 중인 홍순만님/리멤버
Act 5.
행정학자가 바둑 AI를 만들었다고?!
2022년 홍순만님은 행정학자로서 대단히 이례적인 외도를 감행합니다. ‘홍고(HongGo)’란 이름의 바둑 AI 제작에 나선 겁니다.
갑자기 바둑 AI 프로그램을 개발하셨어요.
2019년 즈음부터 AI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챗GPT 등장 한참 전이지만, 사실 학계에선 관련 연구가 이미 유행이었거든요. 심지어 문과인 저희 과 학생들도 전부 파이썬(프로그래밍 언어) 공부를 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정작 교수씩이나 되는 사람이 세상 돌아가는 건 모르고 책에 있는 똑같은 내용만 강의 중인 건 아닐까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때문에 2022년 연구년을 맞아 집중적으로 파 본 거예요. 홍고는 그 과정에서 알파고 논문을 탐독하다 탄생한 거고요.
물론 이공계 논문이니 생소하긴 했지만, 논문은 기본 논리 전개들이 엇비슷하고 보조 서적 역시 출간돼 있었거든요. 어렵더라도 충분히 도전할 만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웬걸, 나중엔 완전히 그 논문에 빠져들어 버렸습니다. 어느새 제가 알파고 논문을 리플리케이트(복제)하고 있더라고요.
리플리케이트,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따라가며 말 그대로 복제하는 연습을 했다는 거예요. 알파고 논문을 보면 그 제작 방식이 굉장히 상세히 나와 있거든요. 더구나 알파고 개발 코드들이 온라인에 오픈 소스로 공개돼 있기도 했고요.
이걸 활용해 나름 저만의 알파고를 만든 게 바로 홍고였어요. 사실 알파고를 그대로 따라 만드는 건 막대한 돈이 들어 불가능해요. 때문에 일종의 축소판을 혼자 만들어 본 거죠.
그게 혼자서도 손쉽게 할 수 있는 건가요?
로봇에 빗대 설명하자면, 로봇의 머리·몸통·팔·다리가 오픈 소스로 이미 공개돼 있는 거예요. 프로그래머의 역할은 이것들을 잘 조립해 좋은 성능으로 로봇이 돌아가게 만드는 거죠. 때문에 인력이 많지 않아도 혼자서 해 볼 수 있어요.
지금이야 생성형 AI가 나온 덕에 무척 쉬워졌지만, 사실 그 조립이란 게 제가 시작할 때만 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각 파트를 이해해야 조립도 할 수 있거든요. 공부할 게 정말 많았고 돈도 꽤 들어갔죠. 연구비도 일부 받았지만 사비도 많이 썼어요. 가족들이 미쳤다며 혼도 많이 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너무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땐 매일 새벽 5시만 되면 눈이 저절로 떠졌어요. 이 공부 때문에 설레서요. 당시가 교수 된 지 한 10년쯤 됐을 때거든요. 딱히 새로울 것도 없고 흥미도 반감돼 있을 땐데 하루하루 설렐 만큼 배우고 싶은 게 나타나 마냥 좋았습니다.
하지만 행정학과 바둑 AI는 너무 거리가 있어 보여요.
제 기존 연구들을 관통하는 주제가 ‘공공 조직의 의사 결정자들은 어떻게 판단하고 선택하는가’였어요. 공공 조직 내 의사 결정은 늘 합리적이진 않거든요. 충분히 더 잘할 수 있는 데도 딱 욕먹지 않을 만큼만 성과를 내고 그 이상은 불확실성을 피하려는 태도, 그런 게 아주 많이 보이죠.
주류 미시 경제학이 상정하는 ‘완전한 합리성’과 배치되는데, 이걸 ‘제한적 합리성’이라 불러요. 제 필생의 연구 테마가 바로 이 제한적 합리성, 즉 합리성에서 벗어나는 다양한 공공 영역에서의 의사 결정들입니다.
바둑을 소재로 한 AI 연구도 그래서 대단히 흥미로웠죠. 바둑이란 스포츠 자체가 불확실성과의 싸움이잖아요. 저는 AI와 인간이 바둑 두는 패턴을 비교하면서, 다시 말해 불확실성에 어찌 대처하는지 살펴보면서, 그 기저에 있는 의사 결정 메커니즘을 더 세밀히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 과정에서 논문도 하나 쓰게 됐고요.
투자에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란 표현이 있죠. 바둑도 마찬가지예요. 아주 큰 땅을 얻을 위치는 리스크가 무척 크고, 집 짓기가 확실한 곳은 리턴이 되게 작죠. 이처럼 바둑 포석을 일종의 투자 의사 결정으로 간주하고 AI와 인간의 패턴을 비교·분석하는 논문을 썼습니다.
연구 결과는 어떠셨나요?
‘Overconfident AI(지나치게 자신만만한 AI)’, 논문 제목이에요. 출간은 확정인데 시기는 미정이라 바뀔 순 있지만 현재로선 그래요.
거두절미하면 AI가 인간에 비해 너무 자신만만하게 행동하는 패턴이 관찰된다는 거예요. 엄청 과신하면서 움직이는데 결과적으론 그게 경을 칠 수 있다는 거죠. 이 경향이 AI 바둑 기사한테 여실히 드러나더라고요.
인간과 AI,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었길래요?
포석 전략에서 양자는 아주 극명히 대비돼요. AI는 무조건 리턴의 평균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고수합니다. 리스크를 고려하란 별도의 가이드를 주지 않으면, 리스크가 얼마든지 간에 아랑곳 않고 승리만을 위해 돌진하는 거예요.
반면, 인간은 일정 수준의 리턴만 취하면 이후부턴 가능한 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향을 택합니다. 즉, 자신이 감당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범위 안으로만 리스크를 부담하는 경향이 일관되게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큰 실수는 오히려 AI한테서 더 자주 나오더라고요. 물론 어디까지나 인간과 AI의 실력이 동일하다고 전제할 때의 연구였지만, 비슷한 수준이면 확실히 인간보단 AI한테 리스크 감수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는 거죠.
제한적 합리성이 어쩌면 인간 본성에 더 가깝겠단 생각이 듭니다. 꼭 나쁘게만 보이지도 않고요.
맞아요, 불확실성을 감수한 결과가 재앙으로 이어진다면 그쪽이 더 나을 수 있어요. 다만 반드시 특정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걸 극복할 기제를 마련하는 게 좋겠죠. 그 기제가 바로 성과 관리고, 그래서 이쪽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 생각해요. 저 역시 이 분야를 주요 연구 영역으로 삼고 있고요.
홍순만님은 2024년 홍고의 후속작으로 ‘노바(Nova)’를 개발, 세계 컴퓨터 바둑 대회 UEC배에 출전합니다. UEC배는 텐센트배·중신증권배 등과 함께 손꼽히는 글로벌 AI 바둑 대회인데요. 노바는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엔가와를 상대로 유일한 승리를 거두는 선전을 펼치고, 창의적 기보로 ‘독창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내친김에 세계 대회에 나가셨어요. 쟁쟁한 AI들을 제치고 5위에 올랐습니다.
사실 홍고도 같은 대회에 나갔었는데, 그땐 성적이 별로 안 좋았어요. 연구년 포함 AI 연구만 들입다 판 게 3년쯤 되는데, 그 성적에 만족하긴 상당히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노바까지 개발한 거예요. 그야말로 대회 출전을 위해 만든 AI였죠.
다른 행정학 연구자들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길을 걷고 계신 듯합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아직 저 같은 괴짜 연구자는 못 만난 듯합니다. (웃음) 물론 트렌드는 분명해요. 요즘엔 사회과학에서도 각종 공공 연구 사업에 참여하려면 AI와의 관련성이나 이공계와의 협업이 없으면 제약이 무척 크거든요. 펀딩 따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학생 수요도 굉장히 큽니다. 이공계 학생들과 직접 경쟁하기엔 부담이 크니, 사회과학대 안에서 관련 수업이 더 많이 개설되길 바라죠. 결국 사회과학 연구자들도 관련 연구를 어느 정도 해 나가는 게 미래 트렌드에 부합할 거예요. 다만, 이런 변화가 아직은 미미한 듯해 아쉽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AI가 민간에선 이미 피부로 와닿는 수준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있죠. 이건 공공 부문도 곧 마찬가지일 거예요. 때문에 관련 연구가 마구 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실상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런 연구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사회과학은 비유하자면 기존 연구에 돌 하나를 더 얹는 방식으로 발전한다고들 생각하거든요. 기존 연구가 부재한 상황에서 AI 같은 신생 분야를 연구한 논문이 저명 학술지에 실리기란 대단히 어려운 거예요.
더구나 대학 내 성과주의가 심화하면서 학술지에 실릴 만한 논문만 쓰려는 관성도 심해지고 있죠. 때문에 과거보다 혁신적 연구를 하려는 교수님들이 줄고 사회과학이 세상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케이스가 느는 듯합니다.
해법이 있을까요?
결국 변화의 원동력은 학생들에게 있다 봅니다. 제 도전을 이끈 것도 오롯이 학생들의 인풋 덕분이었고요. 교수는 연구자이자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잖아요.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 내 변화하지 못하면 결국 뒤처지는 건 연구자 본인일 거예요.
물론 새로움에만 치우쳐서도 안 되겠죠. 기성 연구에 힘쓰는 것 역시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게 현재 제 고민 중 하나예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내 홍순만님의 연구실에 비치된 제자들의 생일 축하 편지/리멤버
Act 6.
멈추지 않는 도전, 그의 다음 연구는?
2024년 9월, 홍순만님은 제14대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원장에 취임합니다. 이곳은 2003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국가 관리·통치 관련 교책 연구 기관으로, 해당 분야에선 가장 영향력 있는 기관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정치학·행정학·사회학·경제학·역사학·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이 함께하며, 인문·사회과학 융합 연구의 중심지로도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POINT OF VIEW
“프로란 끊임없이 멈추지 않는 사람”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나요?
우리나라의 행정과 관계된 사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기관이에요. 기본적으로 역대 대통령과 그 정부의 업적을 들여다 보면서 단기적 시야에서 벗어난 긴 안목에서의 평가를 시도합니다.
사실 정부라는 조직은 근시안적으로 정책을 펴기 쉽잖아요. 당장 다음 선거에서 표를 얻는 게 우선이니까요. 그럼에도 저희 같은 기관이 꾸준히 역사적 관점에서의 평가를 내놓는다면, 그게 나름의 자극이 돼 보다 넓은 시각으로 정책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믿어요.
신임 원장으로서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과거엔 국가 경영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엄청나게 중요했습니다. 헌데 지금은 정부만 중요한 게 아니죠. 게다가 이곳에서 중점적으로 아카이빙한 정부 연구나 사료 역시 이젠 꼭 저희를 통하지 않아도 구하기가 쉬워졌습니다.
때문에 지금은 우리 역할을 나름 새롭게 재정립할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그 일환으로 그간 상대적으로 덜 조명한 기업·시장 영역으로도 연구 지평을 넓혀 가고자 해요. 특히 인재·자본의 해외 유출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만큼, 정부가 보다 더 실효적인 정책을 펴려면 민간의 구조와 논리를 더 깊이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홍순만님은 연구뿐 아니라 각종 정부 조직 컨설팅에도 활발히 참여해 왔습니다. 그 공로로 2019년 행정안전부, 2020년 기획재정부, 2024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각각 장관 표창을 수상합니다.
세 차례나 장관 표창을 받으셨어요.
정부 쪽 컨설팅을 꾸준히 도와드리다 보니 자연스레 받게 된 거예요. 사실 그렇게까지 내세울 만한 업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컨설팅을 꼽는다면요?
기재부가 의뢰한 연구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기재부의 주요 권한 중 하나가 각 부처의 예산안을 심사하고 실제 예산을 편성하는 거예요. 예산 시즌만 되면 모든 부처가 기재부 입만 쳐다보게 되니, 조직 파워의 원천이라고도 볼 수 있죠.
하지만 어떻게 소수의 기재부 담당자가 모든 부처의 사업을 속속들이 파악하겠어요? 가뜩이나 해가 갈수록 다뤄야 할 예산 규모는 점점 불어나잖아요. 사실 시대에 좀 뒤처지는 방식인 거죠.
헌데, 흥미롭게도 당시 기재부 내부에서부터 이 시스템을 개선해 보려는 목소리가 나왔던 거예요. 그 취지에서 저 같은 외부 전문가한테 컨설팅도 맡겼던 거고요.
기재부는 큰 그림을 그리고 세세한 건 각 부처에 넘겨야 한다는 취지로 컨설팅을 했는데, 아쉽게도 실제 제도엔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큰 파워를 지닌 기관이 스스로 쇄신 필요성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컨설팅까지 받으려 했단 사실 자체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만한 공공 조직이 그 정도 노력하기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거든요.
앞으로 행정학을 배워 나갈 후학들에게 해 주실 말씀이 있다면요?
정부의 권한은 갈수록 줄고 있는데, 민간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있죠. 특히 우리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 활발히 진출하면서, 정부가 직접 개입할 여지도 더욱 좁아졌습니다. 상대적으로 정부 파워가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정부의 필요성까지 줄어들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어요. AI 등 기술 발전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온갖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책임자이자 적임자가 바로 정부니까요. 이전보다 훨씬 능동적이고 섬세한 정책들이 필요한 시점인 거예요. 그리고, 그러한 정부의 고민을 다루는 학문이 행정학이에요.
요즘은 공무원 인기가 예전 같지 않죠. 예전처럼 고시를 준비하려고 행정학과에 들어오는 경우도 드물어졌어요. 하지만 공공 부문이 감당할 무게, 이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를 연구하는 건 대단히 의미 있다고 봐요. 학생들이 이런 관점에서도 행정학 공부를 많이 시도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연희관에서 홍순만님/리멤버
홍순만님이 생각하시는 ‘프로’란 무엇인가요?
얼마 전 미국의 한 유명 투자자가 방송에 나와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여전히 내 포트폴리오에서 미국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사람이 꼽은 핵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대학이었어요. 가장 훌륭한 대학들이 미국에 모여 있으니 가장 우수한 인재들도 미국 시장에 몰릴 거고, 자연스레 미국 경제도 그만큼 창창하지 않겠냐는 거였죠.
그 말을 듣는데 스스로 묻게 되더라고요. ‘과연 나는 교단에 선 학자로서 제대로 해내고 있을까?’ 부끄럽지만 아직도 그 답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죠. 도전을 멈추는 순간, 학자로서의 제 지식도 함께 멈출 거란 사실이요. 비단 학계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닐 겁니다.
어느덧 직장 생활 25년차예요. 돌아보면 후회되는 건 딱 한 가지입니다. 바로, 도전하지 않은 것들이에요. 실패했더라도 도전해 본 건 하나도 후회스럽지 않고요. 도전을 해야 변할 수 있고 그래야 발전도 있는 거니까요. 그러고 보면 결국 ==프로란 끊임없이 멈추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아까 AI는 너무 큰 리스크를 감당하다 망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했죠? 헌데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AI든 사람이든 어떠한 리스크도 감수하지 않으면, 반드시 도태된다는 거예요. 자, 여러분은 앞으로 어느 쪽의 리스크를 감수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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