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

‘30년 IT 외길’ 천생 개발자, AI의 바퀴로 세상을 굴리다!

2024. 7. 2.

SKT-부사장-정민영
SKT-부사장-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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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

SNS·AI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기 IT 서비스를 키워낸 베테랑 개발자이자 기술 경영인입니다. 19세 나이로 창업에 나서며 IT 업계에 입문, 그뒤 SNS 미투데이와 뮤직 앱 비트 등 굵직한 서비스 개발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후 네이버 AI 연구 조직 ‘클로바’ 리더로 발탁, 각종 AI 서비스 출시를 이끌며 최연소 임원 자리에 오릅니다. 현재는 SK텔레콤 AI플랫폼 부사장이자 신규 AI 테크 법인 글로벌AI플랫폼(Global AI Platform) CTO로서 글로벌 AI 서비스 개발을 이끌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여러 인기 IT 서비스를 키워낸 국내 최고 수준의 개발자가 있습니다. 2007년 IT 부문을 총괄한 SNS 미투데이는 출시 3년 만에 가입자 100만을 돌파했고, 2014년 선보인 음악 앱 비트는 1년 만에 300만 회원을 확보하며 음원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죠.

지금은 AI 사업을 선도하는 굴지의 기술 경영인이기도 합니다. 2017년 네이버 간판 AI 플랫폼 ‘클로바’ 앱을 탄생시켜 최연소 임원 자리에 올랐고, 현재는 SK텔레콤 AI플랫폼 부사장이자 신규 AI 테크 법인 CTO로서 글로벌 AI 서비스 개발을 이끌고 있죠. 오늘 프롤로그의 주인공 정민영님의 이야기입니다.

<“개발자는 ‘끝없이 목적지를 향해 바퀴를 굴리는 사람’이에요. 헌데 기술만 알고 사람을 모르면 그 바퀴는 엉뚱한 곳으로 굴러갑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바퀴를 제대로 굴려내는 엔지니어이고 싶어요.”>

‘IT 대가’스러운 이력과 달리 그는 1986년생, 올해로 채 마흔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이 바닥 잔뼈가 굵죠. 9살 때부터 프로그래밍에 빠져 알파벳보다 코드를 먼저 익혔고, 10대 시절 PC 통신을 개발 실력 하나로 주름잡다 급기야 19살엔 IT 창업에도 성공합니다.  

“오로지 개발밖에 모른다”는 정민영님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알아야 기술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30년 IT 외길의 천생 개발자가 바라본 기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마침내, 그가 굴려내려는 ‘바퀴’의 종착점은 어디일까요?

SKT-5G-스마트오피스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의 SK텔레콤 5G 스마트오피스에서 인터뷰 중인 정민영님/리멤버

Chapter. 1
알파벳보다 개발 먼저 익힌 IT 신동

$[정민영님이 처음으로 IT 개발을 시작한 건 고작 9살 때였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접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그를 30년 ‘IT 외길’로 이끈 것이죠.]

<"개발자로서 제 관심은 '얼마나 어려운 개발을 해냈느냐'보단 오직 '얼마나 쓰임새 있는 개발을 해냈는가'에 있었어요.">

겨우 9살 때부터 개발을 시작하셨어요.

난생처음으로 그때 컴퓨터를 접했습니다. 누나 따라 우연히 컴퓨터 학원에 놀러간 덕분이었죠. 저한테도 영어가 잔뜩 적힌 책을 하나 주시더니, 거기 적힌 문구들을 컴퓨터에 그대로 입력해보라 하시더라고요. 알파벳도 모르던 꼬맹이한텐 그림 맞추기나 다름없었어요. 오류가 나도 어디서 틀린지 몰라 한참을 낑낑대다 겨우 입력을 마쳤습니다.

마침내 엔터키를 눌렀어요. 바로 그 순간, 모니터 화면에 ‘정민영’, 제 이름 석자가 떴습니다. 알고 보니 그 문구들은 사용자 이름이 출력되도록 설계된 프로그래밍 코드였던 거예요. 화면 속 이름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어린 마음에 너무 신기하고 뭔가 뭉클하더라고요. 그날부터 프로그래밍에 홀딱 빠졌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전까진 밤새 개발하고 학교에선 잠만 자다 오는 그런 학생이었어요.

10살 땐 PC통신 프로그래밍 동호회도 들어가셨다고요.

시골에 살다 보니 주변에 프로그래밍을 물어볼 사람이 딱히 없었어요. 어린 학생에겐 관련 서적도 수준이 너무 높았고요. 배움에 갈증을 느끼던 차에 어느날 누나를 통해 PC통신을 알게 됐습니다. 접속해 이곳저곳 뒤져 보니 컴퓨터 프로그래밍 동호회도 있었죠. 초보든 고수든 누구나 와서 글을 올리고 자유롭게 교류하는 곳이었어요. 거기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입문자를 위한 각종 설명도 많았고, 어떤 질문을 던져도 쉽고 친절하게들 가르쳐주셨거든요.

나중엔 거기서 해킹 대결(?)도 벌이셨다고요.

누군가 암호화된 파일을 올리면 다른 사람들은 그걸 풀 방법을 증명하는 일종의 경쟁 문화가 있었어요. 또, 당시만 해도 도스 운영 체제를 쓰던 시절이니까 도스용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누가 더 잘 개발하느냐의 경쟁도 있었고요. 이렇게 맘껏 경쟁하고 놀면서 제 실력도 많이 성장했어요.

하지만 제가 흥미를 느낀 건 경쟁 그 자체보단 개발의 쓰임이나 효과였어요. 제가 정성껏 개발한 무언가를 누군가 긴요히 써 주고 있다는 기쁨이 정말 컸죠. 사실 개발자들의 관심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요. 하나는 ‘얼마나 어려운 개발을 해냈느냐’, 다른 하나는 ‘얼마나 쓰임새 있는 개발을 해냈는가’. 개발자로서 제 관심은 철저히 후자에 있단 것도 그 무렵 알게 됐습니다. 

$[‘IT 신동’답게 정민영님은 2005년 한양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합니다. 그러나 고등학생 신분을 채 벗기도 전인 2004년 말, 정민영님은 돌연 IT 창업에 먼저 나섭니다. 기업, 공공기관의 전산망을 구축해주는 일종의 SI 사업이었죠.]

대학 입학도 전에 창업을 하셨어요.

집안 형편이 안 좋아 빨리 돈을 벌고 싶었어요. 원래 고등학교도 안 가려 했거든요. 하물며 대학은 언감생심이었죠. 주변 만류로 일단 진학하긴 했는데 돈을 벌어야겠단 생각엔 변함이 없었어요. 당장 등록금도 벌어야 했고요.

다행히 당장 먹고살 분야가 있었어요. 그게 개발이었습니다. 동호회하면서 용돈벌이로 개발 알바를 한 적도 있었거든요. 이때 알게 된 분과 동업도 하게 된 거예요. 벤처 기업에 다니던 분이셨는데 제 능력을 알아봐 주시고 직장까지 관둬 가며 함께해주셨어요. 영업 수완이 좋으셔서 삼성·SK 등 대기업부터 관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데서 일거리를 가져와 주셨죠. 나름 번창해 나중엔 직원 두어명을 더 뽑기도 했어요.

이른 나이의 창업인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너무 많았죠. 개발만 하던 어린 학생이 뭘 알았겠어요. 세금 신고부터 직원 월급 주는 것까지 낯설고 어려운 일투성이였어요. 하다 못해 명함 하나 제대로 만들 줄 몰랐죠. ‘대표’ ‘이사’ 이런 단어들은 왠지 멋이 없어 고민하다 엉뚱하게 ‘수석’이란 단어를 파 넣은 거예요. (웃음) 완전 좌충우돌이었죠. 어려서 겁없이 했지 나이 좀 먹었으면 시작도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힘들어 관두고 싶단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어요. 몸이 지칠 땐 있었지만 일하다 한두 번 쓰러져 보는 것도 왠지 훈장일 것만 같았죠. 그만큼 개발로 돈을 벌고 인정받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개발은 내 평생 천직이구나’ 깨닫는 순간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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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의 SK텔레콤 5G 스마트오피스에서 인터뷰 중인 정민영님/리멤버

Chapter. 2
‘한국판 트위터’ 키운 뒤 돌연 사표 낸 사연?!

$[정민영님은 2007년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나와, 서비스 출범 5개월 차 신생 SNS 미투데이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합류합니다. 당시 미투데이는 ‘한국판 트위터’를 표방하는 국내 최초 단문형 SNS로 입소문을 타며 막 인기를 모으던 시점이었습니다.]

창업한 회사를 스스로 관둔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3년쯤 되니까 요즘 말로 정신적 번아웃이 왔어요. 저는 제 개발품이 어떻게 쓰이고 그 안에서 무슨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SI는 사업 특성상 한번 납품하면 그걸로 끝이었거든요. 처음엔 그저 고객들한테 인정을 받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언젠가부턴 너무 공허해졌습니다.

미투데이엔 어떻게 합류하신 건가요?

저부터가 미투데이를 매일 쓰는 하드 유저였어요. 개발자들이 즐겨 쓰는 SNS이기도 했고, 다른 데와 비교해 분위기도 부드럽고 다양성이 두드러졌죠. 원체 내성적이라 발이 좁은 게 불만이었는데, 전혀 다른 세계의 분들과 부담없이 교류할 수 있어 좋았어요.

그러던 어느날 미투데이에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이 올라왔어요. 당시만 해도 미투데이는 파일럿이었는데 이제 막 정식 서비스로 발돋움하려 하니 직원을 새로 뽑겠단 의미였죠. 헌데 저는 저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했어요. 그래서 “개발을 도와드리겠다. 돈은 안 주셔도 된다”고 메시지를 남겼어요. 정말 순수하게 도움을 청하는 의미로 받아들인 거죠. (웃음) 

나중에야 진짜 의도를 알고 깜짝 놀랐어요. 느닷없는(?) 이직 권유를 받고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합류를 결심했습니다. 동업자한텐 엄청 죄송스러운 상황이었는데 흔쾌히 응원해주시더라고요. 고작 22살짜리의 새 출발이었으니 어른의 마음으로 이해해주신 것 같아요.

미투데이에선 어떤 역할을 맡게 되셨나요?

IT는 전부 다했습니다. 서버 설치, 운영, 고객 대응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빼곤 다했죠. 원체 팀 규모가 작아 일당백을 해야했거든요. 유저들 사이에서도 “모든 문제는 정민영한테 가서 얘기해라”는 밈이 돌 정도였죠. 그만큼 저도 서비스를 사랑했습니다. 제가 애정하는 이 소통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모든 과정이 설레고 행복했죠. 오죽하면 잘 때 베개 아래 늘 폰을 두고 잤어요. 단 하나의 서버 오류 알람도 놓치기 싫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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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의 SK텔레콤 5G 스마트오피스에서 인터뷰 중인 정민영님/리멤버

$[2008년 12월 미투데이는 NHN(당시 네이버 운영사)에 전격 인수됩니다. 합병과 맞물려 미투데이는 급성장을 거듭, 3만명이 채 안 되던 회원 수는 2010년 초 100만명을 돌파합니다. 하지만 초고속 성장의 기쁨도 잠시, 정민영님은 합병 1년 만에 돌연 미투데이를 떠나게 됩니다.]

회원 수가 정말 급격히 늘었습니다. 어떤 이유였나요?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2009년 8월 11일, GD의 초메가 히트곡 ‘Heartbreaker’가 미투데이에 단독 선공개된 거예요. 덕분에 누적 가입자 3만이 안 되는 상황에서 시간당 가입자가 10만으로 폭증했어요. GD와 제휴한 네이버의 홍보 전략이 제대로 먹혔던 거죠. 참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졸지에 엄청난 과부하가 걸려 개발자로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문제들을 쳐내느라 애를 먹었지만요.

그런데 오래지 않아 미투데이를 나오셨어요.

합병 이후론 이같은 가입자 증대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했어요. 그런데 그 시점부터 제가 뾰족히 기여할 게 없단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무래도 마케팅 역량이 가장 중요했을 때니까요. 때마침 병역을 이행할 시점이기도 해 회사를 관두고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하러 가게 됩니다.

GD-미투데이
2009년 8월 GD의 솔로 앨범 출시를 활용한 네이버의 미투데이 홍보 이벤트/플리커

Chapter. 3
‘서비스 흥행≠사업 성공’ 냉혹한 비즈니스의 법칙을 배우다

$[3년간의 대체 복무를 마친 정민영님은 2013년 갓 설립된 어느 초기 스타트업 CTO로 합류합니다. 그리고 1년 뒤, 비트(BEAT)라는 국내 최초 광고 기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내놓습니다. 기존 스트리밍 서비스와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출시 1년 만에 300만명이 넘는 회원을 모으는 ‘대박’을 터뜨리게 됩니다.]

<"좋은 서비스가 곧 좋은 사업은 아니더라고요. 서비스가 아무리 좋아도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지속 가능하지 않으니까요.">

어떤 계기로 비트 개발에 참여하셨나요?

원래 복학을 하려 했어요. 더는 휴학이 불가능했거든요. 그러던 차에 미투데이 때 함께한 박수만 대표님께 난데없이 스카웃 제안을 받게 됐어요. 예전부터 조예가 깊은 음악 애호가셨는데 “요즘 다들 차트 음악밖에 안 듣는 게 서글프다”면서 “믹스테이프 시절 감성을 사람들한테 돌려주자”고 하시더라고요. 유저가 직접 자신만의 세트리스트를 만들어 연인·친구에게 선물하는 일종의 음악 앱을 만들잔 구상이셨죠.

일단 열심히 들어드렸습니다. 그리고 “음 그렇군요. 잘 들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며 차갑게(?) 돌아섰습니다. 그 시절 감성을 몰라서 그런지 도저히 공감이 안 되더라고요. 이 서비스를 사람들이 왜 좋아할까 싶었어요.

그럼에도 결국 합류하셨잖아요.

며칠 뒤 여기저기서 갑자기 황당한 연락이 왔어요. 다들 대뜸 “너 박수만 대표랑 창업했어?”라고 묻더라고요. 알고 보니 글쎄 박 대표님이 자기 블로그에 저랑 찍은 사진을 올려놓고 ‘세번째 합류자’라고 해놓으셨던 거예요. 전화해 따졌더니 “너 진짜 안 할 거야?”라면서 도리어 뻔뻔하게 나오시더라고요. 

결국, 긴 설득이 이어졌고 끝내 제가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결코 억지로 합류한 건 아니었어요. 두 가지 명확한 이유가 있었죠. 하나는 “벅스·멜론의 성공 이래 한국에서 음악을 듣는 방식이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는 말이었어요. 거대한 변화에 도전하겠다는 말로 들렸어요. 개발자 가슴을 울리는 한마디더라고요. 다른 하나는 대표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미투데이 때도 이해 안 가는 아이디어들이 여럿 있었지만 만들고 나면 끝내 사람들이 좋아해주더라고요. 그래서 대표님을 믿고 가보기로 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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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만 대표(뒷줄 가운데)를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비트 출시 관련 언론 홍보 사진을 촬영 중인 정민영님/본인 제공

성공적인 선택이었네요. 단기간에 무려 300만 회원을 확보했으니까요.

안타깝게도 초기 구상인 ‘Again 믹스테이프’ 전략은 대실패였어요. 통상 서비스 콘셉이 좋아야 개발도 빨리 되는데, 그게 아니면 이것저것 고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요. 이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듬고 다듬느라 출시가 1년이나 걸렸고, 곧바로 깔끔하게 망했습니다. 

전부 망연자실해 있던 와중에 솔직하게 한마디 던졌어요. “난 음악은 잘 모른다. 하지만 무조건 쉬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사실 대표님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봤거든요. 다만 해결 방식이 번거로웠던 거죠. 그 번거로움만 덜어내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란 데 공감대가 모였어요. 여기서 탄생한 게 바로 비트였습니다. 틀기만 하면 DJ가 골라준 노래가 나오는 라디오처럼, 좋은 음악들이 차트와 무관하게 랜덤으로 간편 재생되는 방식의 서비스였죠. 이번엔 개발에 딱 두 달밖에 안 걸렸습니다. 결과는 물론 대성공이었죠.

‘대박’의 기쁨도 잠시, 비트는 끝내 수익화에 실패하며 출시 3년 만에 폐업 수순을 밟았습니다.

한창 잘나갈 땐 시간 점유율도 2등까지 치고 올라갔어요. 차트에 없는 노래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음을 입증했던 거죠. 그 자부심이 대단히 컸습니다. 게다가 고객과 저작권자들에게 매우 좋은 서비스였어요. 이용료가 무료였고 저작권료는 높게 책정돼 지급되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좋은 서비스가 곧 좋은 사업은 아니란 걸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높은 비용을 감당하려면 결국 광고로 승부해야 하는데 음성 광고 시장은 너무 작았어요. 그렇다고 영상 광고가 쉬운 것도 아니었고요. 좋은 서비스를 만들면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결국 사업성을 담보 못하는 서비스는 결코 좋은 서비스가 아니었어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으니까요.

이 폐업 과정을 이렇게 입 밖에 꺼낼 수 있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요. 그만큼 그 과정이 너무 사무치게 아팠습니다. 영혼을 다 바친 회사가 무너지고, 전쟁 같은 시기를 함께한 전우들을 떠나보내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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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의 SK텔레콤 5G 스마트오피스에서 인터뷰 중인 정민영님/리멤버

Chapter. 4
네이버 최연소 임원 등극! 간판 AI플랫폼의 초석을 다지다

$[2016년 말 정민영님은 7년 만에 네이버에 다시 합류합니다. 당시 네이버는 AI 연구에 1000억원 이상을 쏟아부으며 관련 서비스 발굴에 사활을 걸던 시점이었는데요. 정민영님은 AI 연구 조직 리더를 맡아 네이버 간판 AI플랫폼 ‘클로바’ 앱 출시를 비롯, 각종 AI 서비스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끕니다.]

네이버엔 어떤 계기로 복귀하신 건가요?

그 무렵부터 네이버가 AI 서비스 개발에 주력하기 시작했어요. 그 일환으로 조직별 분산된 AI 연구 파트를 한데 모아 별도 합동 조직을 꾸렸죠. 그런데 거기 대다수가 연구원이다 보니, 서비스를 만들고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필요했던 거예요. 과거 인연이 있던 저와 비트 개발팀이 그 적격이라 보셨나 봐요. 면접 기회가 주어졌고 다함께 입사하게 됐습니다.

합류 5개월 만에 클로바 앱을 출시하셨습니다. 이게 첨단 AI 어플이나 스마트 TV 셋톱박스, AI 스피커 등의 응용 기반이 됐어요.

원래 제 초기 미션은 프로토타입 수준인 AI 스피커를 상용화하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순서가 틀렸다고 봤습니다. 아무리 새로 나온 기술이 대단해도 새 서비스가 뚝딱 만들어지진 않거든요. 사람들이 그 기술을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해 나가는지 아주 면밀히 추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빅데이터가 온전히 축적될 때만이 비로소 진짜 소비되는 서비스들을 만들 수 있거든요.

AI 기술도 마찬가지죠. 섣부른 제품 출시보단 빅데이터를 담아낼 플랫폼이 먼저여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리고 그게 설득됐습니다. 클로바 앱이 먼저 출시되고 그 4개월 뒤 네이버 첫 AI 스피커가 나온 거예요. 클로바는 특정 기기가 아닌 소프트웨어 플랫폼이에요. 이를 통해 유저들의 AI 사용 경향을 차곡차곡 파악해 갈 수 있었죠. 덕분에 쓰임이 증명된 분야는 스마트폰·자동차 등에 적용해 매우 적확한 제품으로 구현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네이버-AI-웨이브
네이버가 출시한 첫번째 AI 스피커 '웨이브'/네이버

$[2020년 정민영님은 클로바 부문 책임리더로 승진, 34세의 나이로 네이버 최연소 임원 자리에 오릅니다. 당시 100대 기업 임원 중 오너가를 제외하고는 가장 어려 화제였죠. 임원 승진 이후 AI 기술을 B2B 영역으로도 확장하는 등 AI 서비스 상용화에 더욱 박차를 가합니다.]

승진 당시 소회가 어떠셨나요?

“안 하면 안 돼요?”가 제 첫 반응이었어요. (웃음) 처음엔 왜 시키는지도 모르겠고 안팎의 관심도 좀 부담스러웠거든요. 하지만 회사는 인사를 통해 경영 방침을 간접적으로 피력하잖아요. 회사의 숨은 의도를 헤아리고 나니 수긍이 됐어요. 원래 AI 기술자 중 저보다 뛰어나고 연차가 높은 분들도 많았어요. 사실 거기서 임원이 나올 줄 알았는데 돌연 제가 발탁된 거예요.

이건 결국 네이버가 기술도 중요하지만 서비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제 인사로써 표명한 거나 다름이 없었어요. 그리고 이건 개발자로서 제 가치관과도 통했습니다. 개발을 영어로 엔지니어링(Engineering)이라 하잖아요. 전 이걸 ‘기계가 돌아가게끔 바퀴를 굴린다’는 뜻으로 이해해요. 기술을 만드는 것도 개발이지만 그게 서비스로서 사랑받게끔 끝까지 쓰임을 고민하며 바퀴를 굴리는 것 역시 개발인 거죠. 어렵지만 어느 것 하나 놓쳐선 안 되는 게 개발자의 중요한 책무라 생각했어요.

임원으로서 부여된 미션은 무엇이었나요?

승진 이후론 대중적으로 잘 안 알려진 부문에 주력했어요. 클라우드 등 B2B 부문 AI 서비스를 상용화했고, 퇴사 직전까진 초거대 AI ‘하이퍼 클로바’를 기반으로 한 각종 서비스화 작업에 주력했죠. 결국 임원이 돼서도 바퀴를 굴리는 일이 화두였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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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의 SK텔레콤 5G 스마트오피스에서 인터뷰 중인 정민영님/리멤버

Chapter. 5
SK텔레콤 AI플랫폼 부사장 발탁… 기술 아닌 사람 중심 서비스로 세계 AI 시장에 승부수!

$[2023년 4월, 정민영님은 네이버를 떠나 SK텔레콤 AI플랫폼 부사장으로 전격 합류합니다. 뒤이어 신규 AI 테크 법인 글로벌AI플랫폼 설립에 참여, 현재 CTO로서 글로벌 AI 서비스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도와 문제를 푸는 도구이지 그 자체로 신성한 게 아닙니다. 저는 기술보단 그 쓰임을 더 고민하는 개발자로 남고 싶습니다.">

7년 가까이 몸담은 네이버를 다시 떠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사업의 무게 추가 서비스에서 다시 기술로 옮겨가는 것 같더라고요. 특히 어느 순간부턴 모든 문제 케이스를 AI로 다 풀어버리려는 경향들도 나타났어요. 물론 네이버는 원체 데이터도 풍부하고 기술력도 대단한 회사인 만큼, 기술로 승부를 보고자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요. 

하지만 그게 제 소신과는 맞지 않더라고요. 제게 기술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도와 문제를 푸는 도구일 뿐이지 그 자체로 신성한 게 절대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안타깝지만 한국과 글로벌 IT사들의 AI 기술 격차는 초기보다 훨씬 더 벌어져 있었어요. 이 상황에서 저는 기술보단 그 활용을 고민하는 데 더욱 시간을 쓰고 싶었습니다.

SK텔레콤엔 어떻게 합류하셨나요?

원래 당시 제 보스였던 정석근 대표님과 창업에 나설 생각이었습니다. 대표님도 저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계셨거든요. 그런데 그때 SK그룹과 마침 인연이 닿아 저희 생각을 공유하게 됐고, 여기에 적극 공감해주신 덕에 그쪽에 합류하게 된 거예요. 든든한 파트너가 있다면 더 큰 스케일로 AI 서비스 개발에 도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 신규 AI 테크 법인 설립에 참여하고 CTO를 맡고 계세요. 이 회사로 이루려는 목표가 무엇인가요?

애플 시리, 구글 어시스턴트 등 전 세계 PAA(Personal AI Assistant·개인 AI 비서 서비스)에 이제껏 모두가 주목한 건 ‘답변 생성 능력’이었어요. 어디서든 답을 찾아와 높은 수준으로 척척 제시하는 데 감탄한 거죠. 하지만 저희가 더욱 주목한 건 바로 ‘이해 능력’이었습니다. 어설프게 물어봐도 의미와 뉘앙스를 거의 정확히 파악하잖아요.

‘인간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PAA의 기반인 LLM(거대 언어 모델)의 진정한 잠재력이라고 봤습니다. 기계는 언제나 배움의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기계가 사람을 배우는 시대로 뒤바뀔 가능성이 열린 거죠. 그 전환이 본격화했을 때 LLM의 잠재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한 PAA를 선보이는 게 저희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SK텔레콤엔 이미 ‘에이닷’이란 PAA가 있습니다. 이것과 아예 다른 서비스가 될까요?

고민의 결과값에 달린 문제예요. 결론에 따라 비슷한 서비스가 나올 수도 있고 완전 다를 수도 있죠.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기존 그 어떤 PAA보다 ‘기술'이 아닌 ‘쓰임새’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가 될 거란 점입니다.

아울러 훨씬 글로벌 지향적인 서비스가 될 거예요. 저희 본사를 실리콘밸리에 둔 것도 철저히 이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한국에서 시작해 글로벌로 가는 것보단 그 반대가 훨씬 수월할 거라 본 거죠. 비단 사업적 목적뿐 아니라 제 개인적 꿈과도 맞닿습니다. 10명보단 1000명, 1000명보단 1만명, 1만명보단 100만명이 좋아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아주 많은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AI 서비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의 삶이 한 발짝이라도 더 좋아지면 좋겠어요.

SEOUL-META-WEEK-AI-Web3-메타버스
아시아 최대 규모 AI·Web3·메타버스 페스티벌 'SEOUL META WEEK'의 올해 연사로 참여한 정민영님/글로벌AI플랫폼 제공

Chapter. 6
천생 개발자 정민영, 그가 굴리는 바퀴는 어디로?

$[IT 외길만 걸어온 정민영님에겐 또 하나의 이색 이력이 있습니다. 바로 2015년 세계 1위 클라우드 업체 아마존웹서비스(AWS)로부터 한국인 최초 ‘AWS Hero’로 선정됐다는 점입니다. AWS Hero란 개발자 커뮤니티에 자신의 지식과 의견을 공유하는 각국 전문가 중 AWS가 공인한 글로벌 테크 인플루언서입니다.]

<"프로란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바퀴를 굴려내는 사람">

AWS Hero엔 어떻게 선정되신 건가요?

모든 건 AWS 클라우드를 향한 제 사랑에서 비롯된 거예요. 산업기능요원 시절 처음 써 봤는데 너무 편리해 신세계였거든요. 이 좋은 걸 저만 알고 있을 수 없어 주변 동료 개발자들한테 적극 공유했어요. 나중엔 10명 정도가 의기투합해 아예 사용자 모임도 만들고, 페이스북 페이지도 개설해 관련 지식·경험글을 활발히 올렸어요. 

바로 이 활동이 AWS 측에도 알려진 거예요. 마침 그때가 한국 법인 셋업 시기였던 터라, 이런 자발적 유저 모임을 당연히 좋아하고 높이 사 주셨던 거죠. 규모도 점차 커져 지금은 페북 팔로워만 2.6만명에 이르는 큰 IT 커뮤니티가 됐어요. 요즘엔 실무에서 멀어지는 바람에 활동을 잘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운영자 권한은 유지돼 있을 거예요. (웃음)

AWS-Hero
AWS Hero로 선정돼 해당 홈페이지에 소개된 정민영님/AWS

왜 그리 공유에 진심이셨나요?

어린 시절부터 보고 배운 거니까요. 이 개발 바닥에 있는 분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다들 참 순수한 것 같아요. 나름 고급 기술인데 새 지식이 있으면 남들한테 못 공유해서 안달이죠. 바로 이 지나친(?) 순수함이 우리 개발자 모두를 성장시키는 건강한 원동력이라 생각해요. ‘개발자 정민영’을 길러주신 과거 PC통신 어른들한테 진 빚을 이제라도 갚는 심정으로 저도 될 수 있으면 이 문화를 이어가는 데 계속 보탬이 되려고 합니다.

개발은 끝없는 학습이 필요한 굉장히 전문적인 직무인데요. 혹시 전문성을 기른 본인만의 비결이 있으셨나요?

‘덕업일치’가 비결 아니었을까요. (웃음) 그 어떤 기술도 맥락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아요. 평소 꾸준히 들여다보는 게 중요한데, 좋아하는 걸 업으로 삼다 보니 그걸 공부로 느끼지 않아 스트레스를 덜 받죠. 때문에 개발자들은 덕업일치인 경우가 유독 많은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개발자라고 반드시 개발만 하진 않잖아요. 협업도 필요하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도 있죠. 헌데 좋아하는 것 위주로 일하다 보니 좋아하지 않는 걸 할 때 특히 더 어려워들 하는 것 같아요. 사람을 읽어내거나 인문학적 통찰을 발견하는 데 애초부터 비교열위에 있는 것도 같고요. 제가 그렇거든요.

그래도 개발자로서든 경영자로서든 여전히 살아남고 있는 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꾸준히 인풋을 넣으면 무언가 연결되듯 이해될 때가 오더라고요. 당시엔 도저히 이해 안 됐던 일들의 의미도 알게 되고요. 결국 기술처럼 사람 간의 일도 일종의 딥러닝이 필요한 거죠.

후배 개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기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말아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도 천생 개발자라 여전히 현란한 최신 기술이 나오면 열광하고, 주말에도 가끔씩 고난도 코딩에 도전하며 마냥 행복해 해요. 애초에 9살 때 제 이름을 모니터에 나오게 만든 그 기술에 감동할 줄 몰랐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고요. 

하지만 어떤 기술을 대하든 그 상위 목적을 반드시 염두에 두면 좋겠어요. 그럼 그 목적을 둘러싼 기술 이외의 방법론들도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결국 더 큰 목적을 성취해내는 개발자가 될 수 있는 거죠. IT 개발은 굉장히 승수 효과가 큽니다. 그 어떤 분야보다 몇백배 큰 잠재력이 있어요. 개발자 모두가 기술에 앞선 다른 무언가를 고민해낼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거예요.

SKT-5G-스마트오피스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의 SK텔레콤 5G 스마트오피스에서 인터뷰 중인 정민영님/리멤버

정민영님이 생각하시는 ‘프로’란 무엇인가요?

==프로란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바퀴를 굴려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목적지로 가다 보면 종종 길을 가로막는 한계들이 나타나잖아요. 이때 누군가는 거기서 멈추지만, 누군가는 한계를 뚫어내고 계속 바퀴를 굴려나가죠. 바로 이 멈추지 않는 모두가 각 분야의 프로가 아닐까 해요.

이 바퀴를 굴리는 작업엔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와 연구가 필요할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일 거고요. 무척 지난하고 어렵겠죠. 하지만 각자 그 과정을 인내하고 나아갈 방향성을 잃지 않는다면, 어느새 저마다의 바퀴로 세상을 이롭게 굴려내는 멋진 날들이 오지 않을까요?

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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