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인

에버랜드 임원 출신 디자인 전문가, 판다월드 등 꿈의 공간을 그리다

2024. 4. 8.

박재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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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인

現 아미글로비즈 대표, 前 삼성에버랜드 상무

에버랜드의 각종 인기 어트랙션을 탄생시킨 인테리어 디자인 전문가입니다. SOM(스키드모어, 오윙스 & 메릴), CJ 디자인센터, 한화호텔&리조트 등 국내외 유수의 기업에서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담당했습니다. 이후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 발탁, 로스트밸리·판다월드 등의 디자인 기획을 총괄했습니다. 현재는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아미글로비즈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푸바오의 판다월드, 캐리비안베이 아쿠아루프, 생태형 사파리 로스트밸리… 적어도 수십분, 많게는 수시간도 넘게 기다려야만 즐길 수 있는 에버랜드의 대표 어트랙션들이죠. 오늘 프롤로그의 주인공은 바로 이 시설들의 디자인을 총괄 기획한 디자인 전문가 박재인님입니다.

에버랜드에서의 대표작들뿐만이 아닙니다. CGV용산 아이맥스, 투썸플레이스, 태안 골든베이 골프&리조트, 더 플라자 호텔 등도 전부 그의 손을 직간접적으로 거쳐 탄생했습니다. 미국 명문대 인테리어 디자인 학·석사를 모두 수석 졸업한, 그야말로 ‘디자인 엘리트’다운 야심만만한 이력입니다.

<“모든 새로운 일은 롤러코스터 같아요. 시작이 겁날 수는 있지만 일단 도전에 나서면 어느새 빨려들어가 몸을 맡기며 즐기게 되니까요.”>

언뜻 꽃길만 걸어온 탄탄대로의 커리어이지만 처음부터 자신만만한 출발은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순수 미술가를 꿈꾸고 작가도 지망해봤지만, 결국 엉뚱한(?) 방송학을 첫 대학 전공으로 고른 겁니다. 이내 전과해 디자인 학·석사를 수석 졸업하고 세계적 건축 설계사에 입사하지만 디자이너로서 자신만의 확신과 설렘을 갖기까지 오랜 고민과 노력도 필요했죠. 한국으로 돌아와선 미국과 너무 다른 조직 문화에 첫 적응부터 골머리를 앓아야 했습니다.

뼈아픈 성장통들을 딛고 박재인님을 국내 최고 수준의 인테리어 디자인 전문가로 우뚝 서게 한 저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누구나 알 법한 유명 어트랙션 디자인들의 흥미로운 탄생 스토리와 함께 박재인님의 엣지 넘치는 커리어 여정을 리멤버가 담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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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인터뷰 중인 박재인님/리멤버

Chapter. 1
디자인 수석 엘리트의 첫 전공은 방송학?!

$[박재인님은 1992년 미시간주립대 인테리어 디자인학과를 나와, 1997년 워싱턴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석사를 모두 수석 졸업한 그야말로 ‘디자인 엘리트’였는데요. 그러나 의외로, 그의 입학 전공은 디자인이 아닌 방송학이었습니다.]

첫 전공 선택이 방송학이었어요.

친가에 미술하는 분들이 좀 계셨어요. 어려서부터 그림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그리기도 곧잘 해 미술가를 꿈꿨죠. 그런데 중학생 때 그 꿈이 깨졌습니다. 실력이 대단한 미술부 친구가 있었거든요. 어느날 그 애의 수채화를 보는데 ‘내가 이 친구를 따라잡을 수 없겠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버지 반대도 심했던 터라 결국 순수 미술은 단념했습니다. 대신 글짓기도 좋아하고 미디어에 관심도 있었으니 방송학과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디자인으로 결국 진로를 전환하셨어요.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면 충분히 도전해봄직하다고 판단했어요. 이건 대단한 예술적 테크닉을 요구하지 않더라고요. 어느 정도 감각과 안목이 있다면 미술 교육을 받아보지 않은 저로서도 충분히 해볼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틈새 시장이란 점도 끌렸고요. 당시만 해도 한국엔 인테리어 디자인학과가 아예 없다시피 했거든요.

탁월한 베팅이었네요. 일단 학·석사 모두 수석 졸업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저는 미국에서의 취업을 원했거든요. 공부를 잘하면 외국인이더라도 현지에서 충분히 좋은 기회가 주어질 거라 생각했어요. 대신 미국 졸업생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성적도 눈에 띌 만큼 좋아야겠단 생각이었죠. 실제로도 큰 플러스가 됐어요.

$[박재인님은 현지 중소 인테리어 업체에서 3년간 근무한 뒤, 2000년 뉴욕의 세계적 대형 건축 설계사 SOM에 들어갑니다. 뉴저지의 골드만삭스 타워 신축, 뉴욕증권거래소 내부 리뉴얼 등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게 됩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어떤 업무를 했던 건가요?

건축 파트가 건물의 기본적 틀을 설계하고 나면, 제가 속한 인테리어 파트는 건축 도면을 기반으로 내부를 디자인했어요. 이용자를 상정하고 그 행동 패턴에 맞게 공간을 설계한 거죠.

가령 구조벽을 어디에 세울지, 주요 기물은 어떻게 배치할지 등 큰 구조에서부터 햇볕이 어떤 각도로 들어와야 할지, 조명은 어떤 색감이어야 할지 등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공간의 전반적 콘셉을 정했습니다. 뉴욕의 대형 설계 회사에서 여러 흥미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건 행운이었지만, 주니어로서 나름의 어려움은 많았어요.

무엇이 어려웠나요?

학·석사 합쳐 7년간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막상 현장에 나오니 제가 너무 모자란 거예요. 가령 학교에서 가르쳐준 특정 소재가 5가지뿐이었다면, 현장에서 알고 있어야 하는 건 수십가지가 넘었어요. 더구나 상사의 미묘한 디자인 의도도 미국인 동료들은 한 눈에 알아차리는 것 같은데, 동양인인 저로서는 바로 체감되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디자인 스킬뿐 아니라 네이티브의 감각마저 독학하며 경쟁해야 했던 거예요.

학교와 실전은 달랐군요. 그럼에도 현지에서 5년여를 버텼습니다.

피카소가 그랬잖아요.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타고난 현지인들의 감성조차도 공부하고, 모방하고, 거기에 새로 변형을 만들어 가며 노력하다 보니 점차 습득이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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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인터뷰 중인 박재인님/리멤버

Chapter. 2
9·11 아픔 딛고 한국행… CJ서 투썸플레이스·용아맥 탄생에 기여하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박재인님은 돌연 SOM을 관두고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이후 CJ로 이직, 디자인센터·CGV에서 신규 사업에 필요한 각종 디자인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됩니다.]

<“한국 직장에 다니는 건 처음이다 보니 영 자신이 없었습니다. 미국에 아파트도 그대로 둔 채 입사했어요. ‘딱 3개월만 일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미국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요.”>

SOM은 왜 그만두셨나요?

2001년 9월 어느날이었습니다. 당시 회사가 월스트리트에 있었어요. 여느 아침처럼 지하철로 출근 중이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열차가 월드트레이드센터 정거장을 그냥 지나쳐 버리더라고요. 의아해하며 다음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월스트리트 방향에서 웬 연기가 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 봤는데 까무러치는 줄 알았습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엄청 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던 거예요. 그날 9·11 테러가 일어났던 겁니다.

9·11은 미국인들에게 큰 트라우마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제 상사 중 한 분도 이 사건으로 돌아가셨고 연달아 탄저균 테러까지 겹치니 도저히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만큼 심적 고통이 크더라고요. 급기야 거의 마비 수준으로 허리 통증까지 도져 버렸고요. 일단 미국을 나와야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CJ엔 어떻게 합류하게 되신 건가요?

동생이 추천한 회사였어요. 동생이 다니던 회사도 그 근처였던 터라 더 끌리더라고요. 하지만 한국 직장에 다니는 건 처음이다 보니 영 자신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미국에 아파트도 그대로 둔 채 입사부터 했어요. ‘딱 3개월만 일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미국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요.

3개월을 훌쩍 넘어 3년을 다니셨어요.

사실 한국에서의 직장 초년이 미국에서의 첫 회사 생활보다 훨씬 더 어려웠어요. 일단 ‘파지’ ‘시말서’처럼 못 알아먹는 말투성이였고, 기업에서 자주 쓰는 문서 작업도 할 줄 몰라 애를 먹었죠. 차라리 신입이었다면 괜찮았을 건데 과장급으로 들어오다 보니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습니다. 혹여나 가르쳐 달라 하면 왠지 바보 취급받는 것 같기도 했고요.

$[적응의 어려움에도 불구, 박재인님은 투썸플레이스·더시젠 등 당시 CJ의 새로운 외식 매장 프로토타입 개발과 1호점 오픈 과정에 기여합니다. 2004년엔 국내 20여 CGV 극장, 이듬해엔 CGV 용산점 아이맥스 상영관 설계 등의 대형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성과를 인정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끝내 인정받는 성과들을 내셨습니다.

온전히 저희만의 공이라고 할 순 없어요. 설계·시공 업체들과의 좋은 협업에서 나온 결과였으니까요. 일단 저희 같은 기업 내 디자인 담당 조직은 각 사업 특성에 맞게 전반적인 디자인 콘셉을 잡고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업무를 합니다. 이어 체인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선 브랜드 콘셉을 유지하면서도 비용과 일정에 변동이 없도록 전체 프로젝트를 매니징하는 역할을 하죠.

구체적으로 투썸플레이스의 경우 ‘커피가 주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두세명의 친구들이 어울려 가는 곳’이란 콘셉을 프렌치 스타일의 트렌디함으로 구현해 봤습니다. 아이맥스 상영관은 고부가가치 전략에 맞게 리클라이너나 연인용 2인 좌석 등을 도입해 프리미엄한 콘셉을 잡았고요. 차츰 성과를 인정받아가면서 첫 적응의 어려움은 어느새 사라졌고, 일의 흥미와 욕심은 배가됐던 것 같습니다.

2002년 문을 연 신촌의 투썸플레이스 1호점(왼)과 2005년 개관한 CGV 용산점 아이맥스 영화관 내부/페이스북, CGV

Chapter. 3
호텔·리조트·골프장 등 연이은 대형 프로젝트로도 채우지 못한 갈증?

$[2005년 박재인님은 CJ를 나와 디자인 컨설턴트 등으로 2년여간 근무합니다. 이후 2008년 한화로 입사해 계열사인 한화호텔&리조트 디자인지원팀장으로 일하게 됩니다.]

왜 CJ를 관두셨던 건가요?

원래는 MBA를 하러 나왔던 거예요. 디자이너로서의 전문성만으로는 성장에 한계치가 있을 거라 봤거든요. 당시 화두였던 ‘디자인 경영’을 배우려면 MBA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때마침 기업 스카웃 제의도 하나 들어와 “공부하면서 잠깐잠깐 일하면 된다”고 하길래 흔쾌히 입사해 학업과 일을 병행했어요. 그런데 막상 양쪽을 다 하려니 이도 저도 안 되고 있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MBA를 하러 가신 건가요?

아닙니다. MBA를 포기했어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경영이나 조직 관리도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배우는 게 더 크지 않을까?’ 막상 공부하기 싫어 자기 합리화를 한 걸 수도 있습니다. (웃음) 하지만 나중에 뒤돌아보니 그게 꼭 틀린 판단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여하간 제 업무 영역을 확장하고 제가 더 성장할 수 있는 큰 기업으로 다시 이직하자고 마음을 먹게 됩니다. 그래서 한화 경력직 공채에 지원했던 거예요.

한화에서 맡겨진 일은 무엇이었나요?

한화가 보유한 다양한 자산의 디자인을 총괄하게 됐어요. 각종 레스토랑과 호텔, 리조트와 골프장은 물론 63빌딩까지 포괄했죠. 물론 호텔 설계는 미국 근무 때 해보긴 했지만, 단순 설계를 넘어 각 시설의 주요 디자인과 디스플레이, 나아가 가구·유니폼·사인물 등 작은 파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디자인 업무를 한꺼번에 책임지는 업무는 처음이었어요. 굉장한 기대와 부담을 함께 안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박재인님이 재직하던 2년(2008~2010)간 한화에선 대형 건설 사업들이 연이어 진행됩니다. 당대의 골프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이 설계에 참여해 화제가 된 태안 골든베이 골프장과 그 리조트 신축, 서울시청 랜드마크인 더 플라자 호텔 리뉴얼 등 디자이너라면 탐낼 만한 굵직한 프로젝트들이었죠. 여기에 박재인님도 디자인 책임자로 참여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쉬움을 많이 느낀 시기”로 평가합니다.]

이 시기에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들을 회고하신다면요? 

크고 작은 어려움과 도전이 많았죠. 특히 골든베이 리조트는 이탈리아 투스카니풍의 옐로우 색감을 태안에서도 그대로 구현해야 한다는 미션이 있었어요. 무언가와 똑같은 룩앤필을 낸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같은 색이라도 각 지방의 하늘과 배경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 보이거든요. 수백, 수천번의 고민과 작업 끝에 적어도 외관만큼은 썩 만족한 결과물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으로선 이 시기 작업 과정들이 결코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원래 기대했던 바대로 작업을 주도하지 못했거든요. 아무래도 대기업 조직인 만큼 권한이 층층이 분산돼 있어서 특정 파트들에선 제 구상대로 디자인이 구현되지 못했죠. 제 역량과 엣지를 온전히 담아낼 디자인을 점점 더 꿈꾸게 된 시기였어요.

태안 골든베이 골프장(왼)과 더 플라자 호텔/한화호텔&리조트

Chapter. 4
판다월드·로스트밸리… 꿈의 나라서 디자인의 꽃을 피우다

$[박재인님은 2010년 삼성에버랜드 디자인그룹에 전격 합류, 캐리비안베이의 워터 슬라이드 아쿠아루프와 에버랜드의 어린이 전용 시설 키즈커버리 등의 디자인 기획을 주도합니다. 이 같은 성과로 2012년 여성 최초 삼성에버랜드 임원 자리에 오릅니다.]

<“매 시설마다 한편의 종합 예술이란 생각으로 심혈을 기울였고,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 뿌듯합니다.”>

 삼성에버랜드엔 어떤 계기로 합류하게 됐나요?

때마침 한 헤드헌터한테 연락이 왔어요. 처음엔 테마파크 디자인엔 큰 관심이 없어 고사했는데, 같은 포지션을 세 번이나 제안할 정도로 끈질기게 설득해주셔서 마음이 점차 바뀌더라고요. 특히 여느 국내 기업들과 달리 여긴 콘셉부터 설계까지 디자인의 A-Z를 다 책임질 자체 디자인 조직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어요. 결국 생각을 바꿔 지원해보게 됐습니다.

막상 면접은 만만치 않았어요. 첫 질문부터가 “테마파크는 맡아본 적 없는데 할 수 있겠느냐”였죠. 그래도 대번에 “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타이거 우즈도 태어나자마자 골프 프로는 아니었잖아요? 모든 일에는 당연히 처음이 있어요. 돌이켜보니 그 처음을 딛고 무언가를 잘하고자 할 때 필요한 건 경험보단 의지와 학습력이더라고요. 이런 생각을 말씀드리면서 “시간만 주면 세계 1위 테마파크를 만들 수 있다”고 질렀습니다. 말도 안 되는 배짱이었는데 합격시켜 주시더라고요. (웃음)

포부대로 테마파크의 인기 어트랙션 탄생에 기여하셨어요. 아쿠아루프는 캐리비안베이의 랜드마크가 됐고, 키즈커버리도 코로나 사태로 폐장되기 전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았어요.

아쿠아루프는 반년이 넘게 걸린 큰 작업이었어요. 탑승 몰입감도 살리면서, 바깥 사람들의 눈길도 사로잡아야 했죠. 투명 승강장, 반투명 슬라이드 같은 아이디어가 그래서 나왔고, 주변과 잘 어우러지면서도 단번에 눈에 띄도록 색 조합 등에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전성이었어요. 탑승부터 물이 나와 미끄럽잖아요. 기술·안전 부서와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개선을 거듭해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키즈커버리는 아예 유년기 아이들의 시야에 맞춰 설계했어요. 어디에서 부딪히고 넘어져도 다치지 않게 기구 배치에 극도로 신경쓰고 새로운 맞춤 재질까지 도입했죠. 여기에 아이와 부모를 각자의 눈높이에서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는 이중의 과제까지 더해져 정말 많은 노력과 고민을 해나갔던 것 같아요. 이처럼 매시설마다 한편의 종합 예술이란 생각으로 심혈을 기울였고,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 뿌듯합니다.

360도 회전이 가능한 캐리비안베이의 대표 어트랙션 아쿠아루프(왼)와 에버랜드의 어린이 전용 시설 키즈커버리/에버랜드

$[임원 승진 후 박재인님의 커리어 성공 가도엔 더 큰 탄력이 붙습니다. 로스트벨리·판다월드 등 현재 에버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어트랙션들의 디자인 기획을 총괄한 겁니다. 특히 판다월드는 에버랜드 최고 스타 푸바오를 탄생시킨 명소가 됐고, 로스트밸리는 누적 이용객만 1800만이 넘는 초인기 사파리로서 국내외 권위 있는 디자인상들을 휩쓰는 쾌거를 이룹니다.]

로스트벨리와 판다월드는 현존하는 에버랜드 최고 히트작이 됐습니다. 소회가 어떠셨나요?

판다월드는 기대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받게 됐죠. 저희 디자인그룹원들의 창의적인 디자인도 돋보였지만 중국과의 외교에 발맞춘 판다 수입, 각종 미디어 기획, 전문 사육사 트레이닝과 판다 케어 프로그램 등 정말 많은 부서의 협업 결과로 탄생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판다들의 사랑스러움까지 더해져 엄청난 시너지를 냈죠. (웃음)

판다들의 실제 서식지와 비슷하게 조성된 방사장에서 앉아 있는 에버랜드의 인기 스타 푸바오/에버랜드

하지만 인생작을 꼽으라면 단연 로스트밸리를 꼽습니다. 저희 디자인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한 순수 우리만의 디자인으로 탄생한 작품이거든요. 사실 처음부터 저희가 손댄 작품은 아니었어요. 독일 디자인 업체한테 외주를 맡기고, 저희는 전반적인 디자인 감리만 맡기로 했었죠. 그런데 막상 초안을 받아 보니 도저히 더 진행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어떤 이유로요?

너무 리얼한 야생으로 콘셉을 잡은 거예요. 언뜻 생각하기론 이름부터가 ‘버려진 계곡’이니까 다 썩은 나무와 대충 묶은 로프 등으로 구성된 공간이 돼야 맞는 것 같죠. 하지만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가족 단위의 특별함을 체험하러 오는 한국의 평균적 소비자들의 감성엔 안 맞을 거라 봤어요. 야생을 체험한다는 환상을 충족시켜야 하면서도, 너무 날것 그대로 리얼하거나 누추해선 안 됐죠.

처음엔 이것저것 수정 요청을 했는데 고치는 수준으론 안 되겠더라고요. 저희가 직접 나서 새 디자인을 짰습니다. 전반적인 외관에선 야생 그대로를 구현하되 사람들이 직접 접하는 곳은 몰입도를 낮추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위생적으로 깔끔해 보이도록 했죠. 야생이지만 지저분하지 않고, 자연을 구현하지만 더 재미있는 자연으로요. 우여곡절 끝에 저희와 독일 업체 안이 상부에 함께 올라갔고, 결국 저희 안이 최종 채택됐습니다. 삼성에버랜드 디자인그룹의 탄탄한 자체 역량과 세계 최고의 사파리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자는 기획팀의 의지가 합쳐져 아주 유의미한 결과물이 탄생했다고 자부합니다.

박재인님과 그 팀이 직접 디자인을 탄생시킨 에버랜드의 생태형 사파리 로스트밸리/본인 제공

Chapter. 5
박재인표 디자인 롤러코스터, 다음 정류장은?

$[2017년 박재인님은 7년여 만에 삼성에버랜드를 그만두고, 이듬해 ‘아미글로비즈’라는 이름의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창업합니다.]

<“프로란 새로운 일에 맞닥뜨려도 겁내지 않는 사람”>

왜 삼성에버랜드를 떠나셨나요?

테마파크뿐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초대형 프로젝트의 디자인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실망감도 컸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또다시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건 끌리지 않더라고요. ‘디자이너 박재인’으로 계속 살아가고 싶은데 직장인으로서의 수명은 한계가 있을 거라 봤거든요. 그러던 차에 서울 반얀트리 호텔 단독 별채(페스타 홀)의 리뉴얼 프로젝트를 제안받게 됐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기점 삼아 “삶이 아름다워지는 공간을 만들자”는 포부로 아미글로비즈를 창업하게 됐어요.

$[박재인님의 아미글로비즈는 이베이 동탄 오피스, 교보AIM자산운용 서울 오피스 등 사무실은 물론 고급 주택 단지에 이르기까지 각종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습니다. 아울러 메르세데스-벤츠와는 2017년부터 단독 계약을 맺어 총 80개 이상의 국내 전시장 디자인을 총괄했습니다.]

아미글로비즈가 디자인을 총괄한 이베이 동탄 오피스(왼)와 메르세데스-벤츠의 스타필드 하남 전시장/본인 제공

현재 추진 중인 주요 사업 방향은 무엇인가요?

저희 회사가 주력으로 하고자 하는 분야가 2가지 있어요. 바로 ‘시니어’와 ‘럭셔리’입니다. 특히 럭셔리의 경우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급 브랜드인 마이바흐의 브랜드 센터 프로젝트에 참여해 한국 쪽 설계를 담당하고 있어요. 기존 전시장과 차별화한, 전 세계 마이바흐의 브랜드 센터 1호점이 강남에 론칭을 앞두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경영자로 변신한 지 어느덧 7년이 지났습니다. 고충이 있다면요?

저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없이 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회사에 막상 일이 몰리면 그런 마음가짐을 계속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디자이너들이 일을 우선해주길 자꾸만 기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동력은 어디까지나 해당 프로젝트를 향한 디자이너 자신의 욕심과 애착에서 온다고 봅니다. 이 동력을 꺾을 만큼 무리한 일을 강요하면,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있지도 않은 정답을 찾게 되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당장의 수익도 중요하지만 동료들의 일하려는 의지를 꺾는 경영자가 되지 않도록 매일 경계하고 노력합니다.

같은 디자인 계통 후배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요?

인테리어 디자인은 자기 자신의 순수 창작 예술이 아니란 점을 얘기해 주고 싶어요. 어디까지나 고객 니즈에 맞게 공간을 제안해 주는 일입니다. 길이 안 보이고 막막할 땐 사용자의 관점으로 돌아가 고민해보세요. 그럼 거기에 정답이 보일 겁니다.

아울러 “처음 하는 일이라고 겁 먹지 말라”는 말도 해주고 싶어요. 지금껏 하던 일이 아니면 스스로 움츠러드는 경우가 있어요. 결국 그 시작을 넘어서지 않으면 해보지 못한 일들만 쌓이게 되고 자신감은 더 생기기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오늘 용기를 발휘해 시작한 일은 ‘이미 해본 일’이 됩니다. 자신을 믿고 힘을 내 도전해보세요. 어느새 본인이 밟아온 그 ‘처음’들이 앞으로의 여러분을 지탱할 강력한 힘이 돼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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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인터뷰 중인 박재인님/리멤버

박재인님이 생각하시는 ‘프로’란 무엇인가요?

==프로란 새로운 일에 맞닥뜨려도 겁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세상 모든 일은 새로움투성이죠. 그래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매번 막막하고 겁이 날 겁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끈기 있게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주변 그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아는 순간이 오고 본인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시간이 오게 됩니다.

새로운 도전에 기죽고 어려움을 느낀다면 용감하고 빠르게 그 한 발짝을 내딛어 보시기 바랍니다. 두세 걸음쯤 내딛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탄력을 받아 아주 저만치 나아가 있을 거예요. 출발은 겁이 나다가도 어느새 빨려들어가 몸을 맡기며 즐기게 되는 롤러코스터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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